난산
33세, 이르지 않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출산일 하루 전 꼭두새벽에 양수가 터졌다. 통증이 없어서 양수가 터지는 것인지도 모르고 화장실만 계속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아침이 되어 병원에 전화를 한 후에야 양수가 터진 것을 알고는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놀라셨다. 양수가 다 흘러내려서 엄마와 아이 모두 위험한 상태였다. 다행히 수술실이 비어 있어서 빠르게 제왕절개로 출산할 수 있었다. 4킬로를 육박한, 두상이 아주 큰 아들을 낳았다. 그 덕에 남들보다 더 긴 상처 자국이 생겼다.
일주일 입원 한 동안 아이 얼굴을 보질 못했다. 아이가 황달이 심해서였다.
열 달 동안 입덧이 심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낳은 아이라 얼굴을 못 보니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혹시라도 신생아실을 지나가면 보일까 하는 마음에 침대에서 내려서 걷다가, 하혈을 심하게 했다.
수혈을 얼마나 받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핏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 얼굴 한번 보겠다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는 건가.
부모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실감했다.
청년 시절, 난 아이들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장난치고, 고함지르고, 떼쓰는 아이들을 볼 때면 화가 났다.
어린 시절, 별다른 장난감 없이도 혼자서 잘 놀며 순하게 자랐기에 부모에게 떼쓰는 아이들은 더욱 이해가 안 됐다. 어린 아이더라도 분명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것인데, 어째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가란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부모들은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아이들을 저렇게 방치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랬던 내가 아이 엄마라니...
임신 중에도 엄마가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 원망스럽고 싫었다.
‘내가 왜 엄마가 되어야 해? 남들이 다 즐기는 신혼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하고, 덜컥 아이가 생기면 어쩌란 말이야?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내가 왜 엄마가 되어야 되냐고?’ 서글프고 힘들었고, 우울감도 높았다.
그랬던 내가 출산 후, 아이 얼굴 며칠 못 본다고 무리를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아들은 일주일 동안 잘 치료되었다. 건강하게 퇴원을 했다. 일주일 만에 안아보는 아들은 인형 같았다. 새 하얀 피부에 며칠 전에 태어난 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눈을 가진, 곰 인형같이 통통한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있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열 달 동안 난 우울감이 심했었다. 우울감을 달래 준 것은 오직 뱃속에 있는 아이가 전부였다. 그 누구의 위로와 말들도 내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OO아! 엄마가 오늘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은데 마셔도 될까?
OO 아! 엄마가 잘 먹지 못해서 미안해.
OO 아! 엄만 네가 건강하고, 아주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엄마와 친구 같은 사이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럴 수 있지?"
혼잣말이었지만, 대화를 많이 했다. 가끔 태동으로 대답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이와 교감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출산 후 일주일 만에 얼굴을 마주한 아들은, 품에 안겨 땡그란 눈을 맞추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혹시나, 안고 있는 아이를 떨어트릴까, 다칠까, 상처 날까 걱정이 앞섰다.
‘모든 엄마들이 다 같은 마음일까? 나만 심한 건가?’ 모든 것이 처음인 난 두렵기만 했다.
“자연 분만하면 세상이 노랗게 보인다.”
“그래요? 그래도 수술을 하는 것보단 낫겠죠?”
다산 경험이 있는 분의 말을 빌리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느껴 보고 싶었다. 제왕 절개를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연 분만을 하고 싶었다. 난산이었음에도, 혹여나 제왕절개를 하면 아이에게 불이익이 될까 봐, 걱정이 앞섰던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아들은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도 그랬고, 청소년기를 맞은 아들을 보는 요즘에도, 가끔은 ‘난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가?’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그건 아마도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이 커서 일지도 모른다.
'아들아! 건강하고, 바르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