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끓던 20대 시절, 정말 열심히 살았다. 회사 동료들과 열심히 일하고, 놀기도 열심히 놀았다. 또래 친구들이 많았던 회사에선 언제나 즐거웠다. 기숙사가 있던 회사에 취직을 해서 부모님 품을 떠나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근무 시간은 일주일마다 오전, 오후, 야간으로 바뀌는 교대 근무였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입사를 해서인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건, 단순 노무직이 내 적성과 맞지 않았다. 일이 힘드니 동료들과는 아주 돈독했다.
“OO아! 오늘 일 마치고, 호프집 가자”
“그래, 오징어 땅콩이랑 치킨도 먹는 거야?”
“그래, 그러자. 안주 쟁이는 안주 많이 시켜서 많이 먹어라”
맥주 한 잔이면 취하고, 늘 안주를 축내던 나였다. 함께 얘기 나누며, 사회생활에 대한 힘듦과 어려움들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시간들이 좋았다. 언제나 동료들은 나를 챙겨 줬다. 그 덕분에 힘든 회사 생활에도, 그만 둘 결심으로 무단결근을 하던 날에도, 좋은 상사와 동료들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OO아! 오늘 삼겹살 먹고 노래방 가자”
“그래. 좋아.”
노래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노래 부르고 몇 시간을 소리를 지르며 불렀다. 춤을 추며 땀을 흘리고 나면, 업무에 힘들었던 모든 시간들이 해소가 되었다.
요즘처럼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한정적이었던 그 시절. 기껏 해 봐야 노래방, 비디오 방, 나이트클럽과 같은 유흥 업소가 전부였던 것 같다. 유일하게 하나, 큰 놀이 공원이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놀이 기구를 타려면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퇴근하고 나면, 호프집과 노래방은 필수 코스였다. 그런 시간들을 몇 해를 지나 문제가 생겼다.
“말을 많이 하지 마세요. 너무 크게 말하지도 말고, 너무 작게 말하지도 마세요.
술도 마시면 안 되고, 커피도 마시면 안 돼요. 밀가루도 되도록이면 먹지 마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서 더 진행되면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어요.”
언제부터인가 걸걸한 목소리가 나오고 어떨 땐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개인 병원을 갔더니, 원인을 알 수 없어 종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병명은 성대 결절.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실, 병명을 들었을 땐, 지금부터 관리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 안 되는 것이 걱정이었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어 말을 안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먹는 것과 노래방이었다.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달달한 믹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믹스 커피는 하루에 열 잔을 마실 정도로 내 최애 음료이다. 밥을 먹는 수보다 라면 먹는 날이 많을 정도로 난 밀가루를 좋아한다. 슬프고, 아프고, 힘들 때도 노래를 부르고 나면 치유가 될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안 하고 지낼 수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좀 줄이고, 술자리엔 안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환경을 바꾸면 빨리 좋아지겠지.’
그랬다. 나는 되도록 말을 아꼈고, 먹는 음식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좋아하던 커피도, 맥주도, 밀가루도, 먹지 않았다. 당연히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 원래 내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은쟁반에 굴러가는 구슬 같은 목소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때는 가수를 꿈꿀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는 잃었다. 소프라노 음역 대을 오가던 고음을 잃어 안타까움이 컸지만, 꾸준한 관리로 인해 허스키한 지금의 내 목소리는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