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헛헛해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남편의 도시락

by 성문경

인생이 헛헛해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요즘 나는 간헐적 단식 중이다. 폐경과 함께 가속화된 비만을 막기 위한 나만의 전력 질주라고 하고 싶다. 먹는 것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남편이 나에게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했다. 아침에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바로 출근하면, 왠지 아침 도시락을 먹어야 할 것 같은 기시감이 뱃살 증대의 한몫을 했다. 아침 도시락을 까먹고 열량을 다 태우기 전에 점심을 배달해 먹고 늦은 퇴근을 하면 남편은 고생했다면서 잘 익힌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워준다. 그러기를 일 년, 남편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독살하기 위한 계략이 아닌지 의심해 본다. 오늘도 그분이 싸준 도시락을 들고 학원에 왔다.


도시락에 독약은 없다. 대신 남편의 사랑이 가득하다. 한동안 규칙적이지 못했던 나의 식습관을 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는 것도 나는 이해한다. 임신 초기에 김밥을 너무 먹고 싶었는데, 바쁜 남편이 한 달 후 뒤늦게 생각이 났는지 김밥을 사 왔던 적이 있다. 입덧이 그러하듯이 그때는 김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사 온 김밥이니 그럼에도, 먹었다. 아직도 남편은 내가 그때 배탈이 난 이유가 먹기 싫은 김밥을 먹어서인지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순환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불규칙한 식습관이라면서 아침마다 싸주는 도시락, 그리고 그것을 꾸역꾸역 먹는 나는 어딘지 그때의 나와 닮았다. 지금의 뱃살은 남편의 탓이라기보다는 거절하지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간헐적 단식을 결심했다. 가급적 저녁은 가볍게 먹고, 다음날 12시까지 공복 유지하기. 그리고 도시락은 점심으로 든든하게 먹기. 그러면 식비도 절약하고 남편의 도시락도 먹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천은 어렵지 않았다. 공복을 견뎌 나가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쪼르륵 밥을 달라는 배꼽시계의 항거는 지방이 연소되는 소리라 생각하니 기뻤다. 식단을 시작한 아들이 식단을 시작하고 화학적인 것들을 피하니 오히려 수면의 질과 피부가 좋아졌다고 했다. 사뭇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음식과 수면에 예민한 성향인 그가 끊임없이 고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지금껏 나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막고 눈 감고 있었던 나를 보았다. 비만으로 연골이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화 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간헐적 단식 후 몸은 가벼워졌고, 소화 기관은 제 기능을 찾았다. 간헐적 단식이 나에게 상큼한 하루를 주다니 놀라웠다.


오늘 아침 갑자기 아침 도시락을 한 수저 먹자, 막내가 깜짝 놀라면서 “엄마 왜 먹어?”라고 물었다. 월요일은 일요일의 연장선 같다. 살면서 처음 맞는 월요일도 아닌데, 왜 오늘은 마음이 허할까? 날씨가 풀려서 그럴까? 어제 속세의 단짠단짠을 맛이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사춘기의 시작과 끝 지점에 서 있는 다섯째와 막내 때문에 마음이 공허했을까? 어제 축구하다가 손목을 다쳐왔다. 마음이 상했다. 나는 재미있는 만큼만 했으면 하는데, 사춘기 막내를 그게 힘든가 보다. 결국에는 튕긴 공을 막다가 손목을 다쳤다. 그런데 나는 말을 듣지 않는 막내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 같다. 상처가 맛을 느끼지 못하는 허전한 식욕을 만드는 것 같다. 병원에 다녀온 후 막내 등교를 시키고 멍한 가슴을 달래면서 빈 도시락을 본다.

‘사람이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은 아니구나!’

오늘은 점심을 먹지 말아야겠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