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내 멈춘 레몬 나무가 봄에 가르쳐 준 것

저녁밥을 줘 말아?

by 성문경

자연선택의 법칙

작년 겨울 레몬 나무에 응애라는 해충이 찾아왔습니다. 거미줄 같은 하얀 실이 레몬 나무뿐만 아니라 기르는 식물 모두에게 번졌습니다. 관리를 철저하게 잘한다고 자부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작을 숨구멍을 통해 이 작은 생명체는 내 식물의 삶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응애 벌레를 차단하는 스프레이를 구매해서 뿌렸습니다. 식물의 잎사귀를 코팅해서 응애가 부착되지 못하게 하는 듯했습니다. 몇 차례의 도포와 살핌으로 응애는 제거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레몬의 푸른 잎이 떨어지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응애로 많은 가지를, 눈물을 흘리면서 잘랐는데 이제는 레몬 향기가 나는 나뭇잎이 떨어졌습니다. 원인을 살펴보니 응애를 치료하기 위해 뿌린 약이 잎사귀를 코팅하면서 잎사귀가 숨 쉬는 것을 방해한 듯합니다. 그렇게 겨우내 떨어지는 레몬잎을 속절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죽어 가는 것일까?


레몬 나무의 특성상 물을 엄청 많이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겨울이지만 삼일에 한 번씩은 물을 가득 주어야 합니다. 물을 먹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레몬 나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겠죠? 여기는 실내여서 춥지도 않고 항상 비슷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성장할 수 있는 온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날씨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 인간의 몸뿐만 아닌 것 같습니다. 3월이 들어서고 기온이 영하보다는 영상에 머무를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레몬 나무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겨울 동안은 나뭇잎 한 장 레몬 나무의 가시 한 줄기도 자라지 않았답니다. 레몬 나무를 보면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차라리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이 나을 뻔했을지도요. 아무런 변화가 없던 레몬 나무에 어느 날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서서히 자라지는 않는다.


서서히 자란다는 것은 인간 만의 언어일지도 모릅니다. 레몬 나무에 하룻밤 사이에 올라온 가지는 이틀도 되지 않아서 세 갈래의 가지로 자라났습니다. 원래 있었던 11개의 잎의 두 배나 많은 작은 잎들이 돋았습니다. 기다린 겨울의 고통이 순식간에 보상받는 듯했습니다. 지금까지 레몬 나무가 멈춘 것 같았지만, 거대한 에너지를 줄기 안에 모으고 있었던 것일까요? 밥만 축내는 중학생 아들에게 밥 주기도 아까웠던 어제의 사건이 생각납니다. 일요일은 정말 노는 날인지 하루 종일 그림자도 볼 수 없었던 중학생 두 아들은 해가 지자 집으로 기어들어 왔습니다. 일부러 전화도 받지 않은 녀석들의 옷에 붙은 흙먼지 그리고 보슬비가 내리는 운동장에서 뛰어다녀 신발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은 손목을 다쳤기 때문이었습니다. 큰 소리를 질러 혼내지도 않았고 저녁 식사도 주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흐르는 이상하리만큼 적막함을 깨고 남편이 화들짝 소리를 지르자, 막둥이는 손목이 아프다는 핑계를 댑니다. 겨우내 손톱만큼 자리지 않은 레몬 나무에도 물을 준 것처럼, 손톱만큼도 미안해하지 않는 녀석들에게 밥을 줘야 할까요?



오늘 저녁밥 있다.


오늘 꽤 자란 레몬 나무가 새로 자란 잎사귀와 줄기들이 연초록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잘 살아남는 것은 아니네요. 오늘 잘 자라던 줄기의 끝이 시들어서 떨어졌습니다. 생장점이 잘렸습니다. 잘 돌봐줘도 어떤 것들은 자연선택의 법칙을 따라 도태됩니다. 하지만 죽었던 것 같은 목질화된 나무줄기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말라죽어 없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말라죽을지도 모르는 가지 때문에 물 주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가득 물을 줍니다.


인간 키우기도 이럴까요? 차라리 말 못 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따박따박 물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신이 레몬 나무에 변명할 입을 만들었다면 새 줄기가 나는 오늘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입만 툭 튀어나와 변명을 나열하는 두 녀석에게 밥을 줘야겠습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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