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공주의 달콤한 꿈

셋째는 얼음공주

by 성문경


셋째가 방금 장 본 물건이 가득한 비닐봉지를 주르르 쏟는다.


“엄마 이건 우리 잘 안 먹는 거잖아.”


“아니, 이거 얼마에 샀어?”


“왜, 쓸데없는 것만 사는 거야?”


나는 이럴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청문회도 아닌데 매번 장 볼 때마다 검사받아야 하는 건지!


셋째는 장 볼 때 함께 가지 않으면 이렇게 다 털어서 검사를 한다.


나는 또 하나의 시어머니와 사는 기분이다.


유일하게 시어머님의 레이다에서 될 대로 되라고 하면서 버티는 나에게 강적이 나타났다.


언제부터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 없는 방에 불 켜지 말라면서 방마다 검사를 한다.


그리고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돈이 남아나?”


이건 내가 할 대사 같은데, 오히려 셋째가 하니 나는 할 말이 없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 왔을 때, 셋째는 세 살이었다.


나로 적응하느라 또 넷째를 임신한 상태여서 첫째가 전적으로 키운 것 같다.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면 첫째는 자는 셋째를 업어서 3층까지 걸어서 올라왔다.


언니와 오빠가 먹는 만큼 먹어야 성에 차는 셋째는 또래보다 더 통통했다.


세 살이 먹을 만큼 간식을 주면, 간식 그릇이 꽉 채워질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키는 작고 체구는 통통해서 탱탱볼 같은 꼬맹이가 나에게는 존재감이 없었다.


큰딸처럼 일상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힘들면 옆에 와서 손잡아주는 둘째 같지도 않았다. 셋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우는지 모르고, 나는 넷째 육아에 정신이 없이 셋째의 유아 시절은 그렇게 지나간 것 같다.



셋째가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이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다.


중학교 1학년에 왕따를 당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셋째의 꿈이 호텔리어라고 했다.


그때 나는 ‘도대체, 왜?’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비스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17살짜리 고등학생이 지금까지 숨겼던 발톱을 빼서 번쩍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중학교 때 성적은 중간 심지어 수학 포기자인 셋째가 어떻게 한국에 제일의 호텔학과에 간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이 아이를 모르는 걸까?”라는 질문을 했다.


셋째는 반에서 회장 그리고 학교에서는 학생부의 간부를 차지했다.


나는 정말 이 아이를 모르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셋째는 집과 학교를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듯 반복한다.


물론이다. 셋째는 나랑 같은 집에서 거주한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틈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셋째에 대해 큰아이에게 물어봤다. 썸남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팀플레이를 함께하는 일원이 만나보자고 쪽지를 보냈지만, 모른척했다고 한다.


셋째는 자신의 공언처럼 자신이 원하던 대학의 호텔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디저트를 좋아해서 음식 개발도 하고 싶다고 하더니, 모 식품 회사의 신제품 테스터이다.



셋째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아이일까 생각해 본다.


분명 셋째를 출산한 순간이 기억난다. 출산 다음날 첫째와 둘째가 아기를 조심히 안고 찍은 사진도 있다.


나와 결이 다르다고 내가 방치하고 키운 걸까?


어느 순간부터 쌀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이지만 빵순이 셋째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나 없이 혼자 자라느라 많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넷째의 옆구리를 찔러 물어봤다.


“언니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짠순이에다 이중인격자요.”


짠순이 인정한다.


왜 저렇게 지독한 짠순이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셋째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까?


언제쯤 이 아이와 내가 같은 곳을 보면서 함께 공감할 수 있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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