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때가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가 한 이야기지? 열심히 네이버 검색을 돌렸다.
놀랍게도 성경에 솔로몬이 쓴 챕터가 있다. 인생은 허무하고 허무하다고 노래하는 전도서 안에 수록된 이야기다, 역시 솔로몬 하며, 엄지 척을 날렸다.
누군가 첫 임신, 첫 입덧의 경험은 평생을 간다고 했다.
첫 임신 그리고 입덧이 찾아왔다. 입덧 때 처음으로 먹고 싶었던 것은 김밥이다. 누군가 고작 김밥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의 배경은 26년 전 호주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관심 없는 그 나라에서 김밥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김밥을 가장한 일본 롤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참기름과 소금을 솔솔 뿌려, 밥을 고소하고 짭조름하게 간을 한 진짜 한국 김밥이었다. 시티에 나가면 한국 김밥을 파는 곳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남편에게 김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겨우겨우 사는 유학생 부부는 아니었다. 남편은 그 당시 유학생이면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금전적인 여유도 있었고, 자가용도 있었다. 단지 시간이 없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있어서 그에게 시간은 금이었다. 나에게는 평생 한번뿐일 첫 아이 그리고 첫 입덧도 소중했다. “나 임신을 했어”라고 하면 남편은 감격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국룰이 아닐까? 남편의 반응은 좋아도 아니고 싫어도 아니었다. 아직 공부가 끝난 것도 아니고 이 나라에서 우리의 위치가 확고한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임신은 나중에 하면 안 될까.’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 임신도 3년을 기다려 간신히 찾아온 아기 천사인데, 선뜻 포기라는 것 자체도 막막했다.
김밥이 먹고 싶었다.
남편은 불편했을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나는 김밥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으레 입덧이 그렇듯이 먹고 싶은 항목이 과일로 변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그 어느 날 김밥을 네 줄이나 사 왔다. 그놈의 생각이 나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을 발효시켜 사온 김밥이다. 사실 김밥에서 나는 미묘한 냄새에 뱃속이 뒤틀렸다. 그가 나와 아기를 생각했다는 부분에 의미를 부여한 나는 미련한 노력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을 먹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최대한 행복한 웃음을 만들었다. 날씨가 무더운 호주에서 자동차 안에 몇 시간을 있던 김밥은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26년이 지나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알루미늄 포일에 싸인 두툼한 김밥과 초 예민해진 임산부의 후각을 자극해서 단전부터 거부감을 일으키는 미묘한 냄새. 한 달 전의 이야기를 기억해서 김밥을 드디어 사왔 다는 남편의 빙구미 넘치는 미소. 우리의 엇갈린 타이밍.......
아직도 남편은 모른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렇지만 초보 남편, 초보 아빠를 이해하기로 그날 나는 결심했다. 시댁에서는 남편 공부 방해하지 말고 한국으로 나만 들어오라고 했다. 내가 남편도 없는 한국에서 씨월드까지 감당할 수 있을는지, 이번에는 남편은 어떤 결정을 할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었지만 튼튼한 첫째 딸이 태어났다. 남편은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죽어도 살아도 한배를 타기로 했다. 딸을 보기 위해 마시던 술도 끊었고 음주 운전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남편이 딸과 내가 절실했던 시간에 김밥을 사 오지 못했지만 한배를 탄 이상 봐주기로 한 내가 생각났다. 나는 그렇게 김밥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나의 최애 음식이다.
이 모순이 이상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