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럭키 세븐이야
은행창구에 와서 기다리면서 글을 쓴다.
내 앞에서 은행 직원이 대출 연장 서류업무를 하고 있다.
그녀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음악처럼 일정한 가격으로 흐른다.
대출 연장하기 위해 기다리며
'나는 왜 금융에 무지한가!'라고 자책하고 있다.
타국에서 비자연장하러 이민성에 갈 때마다 느꼈던
쪼그라드는 감정을 은행에 올 때마다 느낀다.
은행직원은 친절한 말과 친절한 눈빛으로 설명해 주는데
그런데도 나는 목덜미 뒤로 한기가 흐른다.
기다리는 동안의 이 미세한 떨림은
내가 대출을 받는 '을'의 입장이어서 그럴까?
돈을 맡기는 '갑'이었다면
또 다른 마음일까?
매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의 불편함과 동시에
꼭 꼭 꼭 대출 같은 이런 금융에 관련된 분야는 공부를 해야지라는 결심은
휘발성이 강하다.
일을 처리하고
은행문을 나오는 순간 모든 감정이 초기화된다.
꼭 시험을 망친 뒤 OMR카드를 제출하며 다짐하는 아이들처럼
막둥이과 약속을 했다.
전체 과목에서 5개 이상 틀리면 축구는 없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얼마나 큰소리로 대답하는지,
사실 은근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그런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어제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엄마 과학은 100점 맞을 것 같아."
내가 과학은 까짓것 100점은 맞아준다는 태도였다.
공감을 해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이런 면에서는 나는 완전 T다.
오랫동안 아이들 지도해서 나는 아는 느낌이다.
과대한 자신감의 표현은 불안감의 연장일 수도 있다.
연습문제와 시험은 다르니 시험이 끝날 때까지 성실하게 공부하자고 했다.
막둥이는 노는 것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이상적 학생은 아이였다.
엄마 7개 틀렸어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한 과목당 몇 개가 틀렸는지
문자 보내라는 말에는 대답이 없다.
결국은 과목당 7개씩
세 과목 777
세 개의 러키 세븐
지나간 시험을 어쩌랴.
축구팀을 빌미로 시험 전날도
새벽에 학교에 가서 축구공을 차고 논 것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기로 했다.
아침에 은행을 다녀와서 금융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을 잊은 듯
아침에 중간고사를 보고 온 막둥이는 햄버거 하나를 먹자마자
777의 우울함은 초기화되었다.
역시 럭키 세븐 효과
해맑게 웃으면서 내일은 국어랑 수학을 100점 맞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친다.
이 시점이 공감할 시점이야. 대뇌가 신호를 보낸다.
"그래 할 수 있다. "
정말 중요한 건 100점일까.
아니면 그 말을 할 수 있는 마음일까.
점수보다는 이루어 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
이 시기동안은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했다.
지금 미적분 한 문제 맞는 것보다
미적 한 문제 풀었다는 성취감을 배웠으면 한다.
영어 한 문제 더 맞아 등급이 올리기보다
영어로 쓰인 멋진 소설을 읽고 감동받았으면 한다.
세계지리는 써먹을 때는 없지만
제주도의 주상절리를 보고
먼 시간 전에 용암을 뿜던 제주도를 상상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한다.
대출에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받으면서
나는 모르는 영역이라고 피했왔던 것들,
어렵고 불편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들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마주칠 운명이다.
그건
영어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닮아 있다.
아이들은 시험으로 흔들리고
나는 오늘 은행으로 흔들리고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들의 세계에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장구를 쳐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찬란한 날개를 퍼덕이면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