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효리님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었다.
나는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 적이 있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사랑한 적이 있나?
그때도, 지금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내 꿈도 누군가를 진짜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가치중립적인 사람을 꿈꾼다.
가치중립이라는 것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궁극의 여성성인 포용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어떤 것도 너그럽게 감싸주는 것.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해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상담교사가 됐다.
인간을 이해하게 되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나도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랑은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사랑의 유효기간은 대상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전까지였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대상에 대한 감정이 아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기술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 대상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사랑을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남성은 여성에게 궁극의 여성성을, 여성은 남성에게 궁극의 남성성을 바란다.
궁극의 여성성은 포용력이며, 궁극의 남성성은 책임감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성은 이해심이 넓을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남성은 책임감이 강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환상 속 상대방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 또한 포용력 있는 여자인 척, 책임감 있는 남자인 척을 한다.
환상이 깨지면,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사랑이 끝난다.
사랑이 끝난 대상에게는 포용도 책임도 없다.
비난하고, 바꾸려고 하고, 조종하려 한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희생하지 않는다.
배려하지 않는다.
사랑은 없고 감정만 남은 관계는 서로를 고통스럽게 한다.
갑작스럽게 정서적 또는 육체적 파트너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관계를 억지로 이어간다.
그마저도 가치가 다할 때쯤, 완전히 끝난다.
지금 나에게 사랑은 '이해'다.
대상이 환상을 깨더라도 여전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아직까지 그런 사랑을 한 적은 없다.
대상이 나의 환상을 깼을 때, 대부분 관계를 끝냈다.
최근 이어가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나?
아니었다.
환상이 깨지기 전까지는 그 사람 자체를 포용하려고 했다.
리스크가 큰 만남이었지만, 기꺼이 내가 감당하고 싶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 '나의 속도를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환상이 깨지기 전까지는.
환상이 깨지자, 관계를 단절하려 했다.
하지만 끝내지 못했다.
사랑은 끝났지만, 감정은 남아있었다.
욕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사랑이 끝나자, 나는 그 사람을 포용하지 않았다.
내 선을 침범할 때마다 벽을 세우고 나를 지켰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강하게 나갔다.
마지막까지 나는 내가 가장 중요했다.
이기적이었다.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
욕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정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그 대상 자체가 목적인 것.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
기꺼이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것. 자존심을 버려도 내가 초라해진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 것. 희생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