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종말론
정치인은 항상 종말을 이야기한다.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를 잠식해서 소멸시킬 것이라던지,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쑥대밭이 될 거라던지. 전세계적으로 그렇다. 경제든 교육이든 국방이든 행정이든 모든 단어에 "문제"나 "위기"를 붙이고 해답을 찾겠다고 나서는 게 정치인의 용어다.
기후위기를 예를 들어보자. 기후위기는 "종말"을 불러올 것이고, 인류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희망"이 있다. 기업인들은 "희망"을 앞에 둔다. 당신의 소비로 환경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해야 기업의 물건을 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종말"을 앞에 둔다. 거대한 공포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나를 찍어달라고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표 한 번 안한다고 나라가 뒤집어지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정치에 관심이 크게 없어질 터다. 정치인들에게는 유권자들이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전쟁과 위기를 베고 잠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서 세상을 지키고 싶어지는 것이고, 당연히 위기와 싸우는 나(정치인)에게 표와 돈을 보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비추는 뉴스와 미디어도 종말을 항상 품고 있다. 세상 모든게 문제고, 위기고, 공포다. 나라 곳곳에는 비정상적인 오류들과 실수가 가득차 있고,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대로를 활보하고 다니는게 정치 뉴스 속의 세상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럴까. 그러기엔 아직 우리 국가 시스템은 너무 견고하고, 국민들은 상당히 제정신이다.
당연히 옥에도 티가 있다. 대체로 괜찮게 굴러가는 시스템에도 오류는 있는 법이다. 정치는 이 오류를 찾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정치인은 항상 문제를 찾고, 그걸 비추는 뉴스는 항상 위기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뉴스만 보는 사람은 너무 많은 불만과, 부조리와 오류를 마주치게 된다. 우울해질 수도 있다.
당연히 정치도 밝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코스피 5천을 만들어 경제와 나라를 살리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던가. 더 잘사는 나라와 더 행복한 국민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정치의 한 방향일 수 있다. 문제는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 시스템을 한 명의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팔다리 어느 하나가 다쳤을 때는 이를 치료할 수 있다. 만일 소실되었다고 해도 의족이나 의수를 다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더 나은 효율을 위해 팔 하나를 추가하겠다면? 이는 엄청나게 힘든일이면서 어딘가 께름칙하기도 하다. 선진국 반열에 든 대한민국은 시스템이 어느 정도 틀을 갖춘 상태다. 여기서 새로운 길을 열겠다고 말하는 것은 틀을 깨고 팔을 뻗는 것과 같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 뉴스를 보는 것은 분명 삶에 도움이 된다. 흔히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잘 알고, 어쩌면 주식투자로 돈을 벌 수도 있다.
뉴스와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사고가 나고, 경제와 인구 지표는 안좋아도 나의 오늘은 잘 흘러가야 하지 않겠는가. 의원 누구가 당을 배신해도, 저녁에 먹은 삼겹살이 맛있었다면 인생은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가끔은 종말론을 흘려듣고, 일상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