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번째 글을 쓰면서
100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뜻한다고 합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100은 엄청나게 큰 수이자 완벽함을 상징합니다. 특히 우리에게 시험의 100점은 더할 나위 없는 만점이지요.
다만 저는 100편의 글을 써오면서도 그 의미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이번 글은 지식을 전달하려는 글이 아니라, 그저 제가 생각하는 대로 솔직하게 흘려보는 글입니다. 보통은 다 쓰고 나서 윤문을 한 번 하는데, 이번에는 흐름에만 맞으면 제 표현을 그대로 두고 넘어가 보려 합니다.
생각의 흐름만 따라가다 보면 100번째 글이라는 의미를 놓칠 것 같아, 네 가지 질문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200번째, 300번째에도 이 형식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나는 왜 쓰기 시작했는가
저는 생각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흐르는 물에 맡겨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는 말을 믿으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누가 요구하거나 지시하면 제 생각을 명확히 말하기보다는, 지시받은 일을 비판 없이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였습니다.
다행히 주변에 좋은 분들이 계셔서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부끄럽게도 나쁜 지시를 받았더라도 처음에는 괴리감을 느끼다가 결국 합리화하며 따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성향 탓에 주체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웠고, 사회와 관습이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라야만 안심이 됐습니다. 옳은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덧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됐고, 저는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맞을까? 과거의 방식이 지금 상황에도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상황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새로운 방향을 잡지? 기준이 뭐지?
이게 여기에 맞는 일인가? 내가 판단할 영역이 아닌 것 아닌가?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는데, 이만큼 하면 되는 거 아냐? 불편하고 불안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퍼포먼스도 기대만큼 안 나오고, 남들의 기대는 올라가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운 일만 하고 있지? 왜 행복하다는 느낌을 못 받고 있지?
내 탓인가?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는데, 내가 뭐 그리 잘나서 힘들다는 소릴 하겠어. 무시하고 하던 대로 하자.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놓친 것이 없는지 샅샅이 살피다 보니 업무 시간이 늦어지고 피로도는 더 높아졌습니다. 만의 만에 대비하는 성향이 생기면서, 제 자신보다 업무에 중심을 두며 스스로를 혹독하게 대하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행복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매일 떳떳하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에게 불평과 불만을 쌓아두었습니다. 결국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이 삶이 계속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내의 권유로 글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있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책을 내고 유명해지는 거 아냐? 잘 써야지.'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업무 업적을 정리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AI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가장 최근에는 제 나름의 흥미로운 주제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엮어 제 나름의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100편 동안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안 바뀌었는가
가장 중요하게 바뀐 것은, 제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브런치에는 수많은 글이 있고 훌륭한 명문들이 많아 저 같은 작은 글들은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묻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제 생각이 정답이 아니어도 그 생각의 흐름은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휘발되어 끝나는 것이 아닌 제 흔적을 통해 더 나은 생각을 낳아보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명문들 속에서 제 글을 찾아 흔적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사함에 글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세간의 주목을 받거나 하지 않기에 잠시의 관심으로 끝날때가 더 많지만 그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드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쓴 글이 저에게만큼은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글은 프로의 글이지만, 저는 아직 아마추어입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저에게만큼은 인정받는 글을 쓰면 되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경력을 쌓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고, 저 나름의 서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젠 이력서 몇 장이 아니라, 그 서사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흔적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AI가 너무나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에 많이 울고 고민했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이 조금씩 정리됐습니다. 이제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안 바뀐 점도 있습니다. 아직 깨지 못한 고정관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불안하고,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모든 걸 망치는 건 아닌지 상상하곤 합니다. 한계를 미리 상정하고 일하는 버릇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침 6시 기상, 저녁 11시 취침, 60세까지 이 일을 하고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지. 이런 기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필요하면 밤새워 일하고 장렬하게 불태워도 됩니다. 저는 항상 겁쟁이였는데, 나중에 뉴욕에서도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이제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 있는가
이전에는 회색과 검정, 흰색만 있는 세계에 살았다면, 이제는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겼고, 그 덕분에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억지로 있어 보이기 위해 살아왔다면, 지금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조금 더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뀐 점입니다. 예전에는 남들의 생각을 그대로 가져오기 바빴는데, 이제는 알고 있는 것들을 제 방식으로 다시 섞어서 제 생각으로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글을 쓰면서 조금씩 됐습니다.
아직 제 글은 부족합니다. 생각 정리가 덜 된 글들은 독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가 지금 저의 위치입니다. 200개, 300개를 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그간 놀이터에 들어와 낯선 친구들을 보고 잘나 보이고 싶어서 과하게 행동했는데, 이제는 놀이터에 맞게 놀아보자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솔직한 모습으로 저를 알고 직면하는 활동을 계속하면서 제 자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그래도 계속 쓸 건가
처음에 이 질문이 불편했습니다. 부를 창출하지 못해도, 명성을 얻지 못해도 계속 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아무도 얻지 못할 부는 없고, 평생 못 얻을 명성도 없습니다. 모두가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면, 언젠가는 제 어깨에도 먼지가 한 번쯤 앉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이 들판을 걸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아직도 이 브런치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을 잘 모릅니다. 커리어를 위한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도전해보고 싶었던 소설가의 면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살면서 거울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욕을 뱉었습니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 정도로 컸습니다. 그런데 이곳 브런치에서 제가 생각하는 모습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루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나마 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앞으로도 계속 쓰려고 합니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감정을 표현할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100번째 글을 제 자신이느끼는 바, 그리고 생각의 파편을 그대로 흘러가듯 적어보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은 이렇게 생각의 파편을 가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다보면 지치고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깊게 제 생각속에 빠지다 보면 우울감이 찾아올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계속 지속되는게 아닌 주변의 환경과 상황에 큰 영향을 받아 쓰다보면 주제를 벗어나 글이 밝은 톤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순간적인 변화도 이번 글에서는 가감없이 표현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읽기위한 글이 아니라 쓰기위한 글이 된거 같아 읽으시는 분들께 죄송스러워집니다.
하지만 100 번째 글인 만큼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이론을 한번 도전해 본 경험이 있고 그 결과를 낸 만큼 의미있는 100번째 글이 된것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어떠한 거짓말 없이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발산해본 최초의 글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와이프가 없었더라면 제가 이렇게 글을 쓰지도 못했을 텐데 너무나 감사하고 항상 고맙습니다.
끝으로 감사드릴것이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고 그래도 기억해주시는 작가님들이 계셔서 제가 얼마나 글을 쓰는데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팔로워한 분들부터 계속 새로운 분들까지 그분들을 보며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