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빛으로 나서려는 순간

by 맑음

마르고 다부진 체격, 무표정했던 얼굴이

그날은 눈을 부라리며 순이를 불렀다.


큰언니의 남편,

읍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형부였다.


선을 주선한 장본인.

선 자리를 앞두고 신부 될 사람이 도망쳤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순이는 시선을 돌려 못 본 척.

서둘러 옆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형부의 구둣발 소리가 저벅저벅 다가오는 순간,

거칠게 순이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고개가 강제로 꺾였다.

그리고 두꺼운 손바닥이 뺨을 세게 후려쳤다.


“감히 도망을 쳐? 사람 망신을 시켜?”


순이가 바닥에 쓰러지자 형부는

머리채를 움켜쥐고 시장바닥을 질질 끌고 갔다.


누군가 입을 막으며 발걸음을 멈춰 섰고,

또 누군가는 순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들의 눈동자가 슬며시 아래로 떨어졌다.


순이는 흙먼지가 이는 바닥 위를 끌려가며,

입술을 질끈 다물었다.




시장에서 끌려오는 내내,

순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따귀를 맞은것도, 남자에게 머리채를

잡힌 것도 처음이었다.


시장 한가운데,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겪으리라곤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걸까?"


말없이 멍하니 끌려온 길, 그 길 끝에 있는 곳이

더 이상돌아올 ‘집’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조금씩 깨달았다.


순이에게는 친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이미 순이가 열다섯 살 되던해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한지 오래였다.


큰오빠 부부가 집과 땅을 모두 차지했고,

여동생들은 식모로,

남동생은 농사일을 돕는 일꾼으로만 여겼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오빠의 아이들은 차례대로 학교에 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딸에겐 미용실을,

아들에겐 정육점을 차려줬다고 했다.

막내아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까지 진학 시켰다.


복이와 순이가 다른 지역에서 식모살이 하고,

공장에서 일한 돈은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다.


복이가 세탁소를 하는 아홉 살 많은 총각에게

시집을 가며 가지고 간 혼수는 그릇과 수저세트가

전부였다고 했다.


그러니 형부마저

처제들을 함부로 대하는 게 쉬웠을 것이다.


‘하찮은 것들이,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감히 반항을 해?’


누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을까?

그 질문에 뚜렷한 답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 자신에게 기댈 친정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


그렇게 조용히,

마음 한 귀퉁이가 푹 꺼져 내렸다.


작가의 이전글5장 그림자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