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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note Oct 01. 2020

[지하철생활자] 32. 할머니의 백팩

지하철을 타다 보면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쉽게 볼 수 있다. 

거의 수레를 연상시키는 카트를 끄시는 할아버지와 이삿짐이 아닌지 의심되는 

커다란 짐가방을 거의 끌고 가다시피 매고 가시는 할머니가 꼭 계신다. 

나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항상 새우깡이 생각난다.


중학교 3년 동안 시골에서 할머니와 친척들과 함께 살았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있는 고모네에 갔다 오셨는데,

갈 때마다 백팩이 터져라 고모들에게 줄 음식과 약들, 누군가에 선물 받은 화장품 등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다 담아 가셨다. 

그 가녀린 몸으로 항상 당신보다 큰 백팩을 메시고선 직접 버스를 타시고, 지하철을 타고 다녀오시곤 했다.

할머니는 돌아오실 때도 역시 늘 빵빵한 백팩을 짊어지고 오셨다. 

가방 안에는 집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던 손자 손녀들을 위한 간식들과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다. 


어떤 날은 꽈배기 도넛, 어떤 날은 연필 세트, 

그것들은 대부분 그 시골 촌구석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괜히 돌아올 때도 무거운 백팩을 메고 와야 했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너무 속이 상해서 여행 다녀온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싸오시냐고,

이런 것들은 시골에도 있다고 할머니께 괜히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할머니만 서울에 다녀온 게 미안하시다며 

원래 멀리 나갔다 올 땐 빈 손으로 돌아오면 안 되는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서울뿐 아니라 어디든 밖에만 나갔다 오시면 한 번도 빈 손으로 돌아오신 적이 없으셨다.


어느 날은 서울에서 돌아온 할머니의 가방이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긴 한데 평소보다 가벼워 보였다. 

풀어헤친 가방 속에는 새우깡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서울에 있는 좋은 것들을 손주들도 맛보게 해주고 싶은데,

딱히 찾지 못했다며 할머니는 머쓱하게 웃으시곤 새우깡을 나눠주셨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순간까지도 손주들을 위해 뭘 사갈지 고민 고민하시다가 

터미널 슈퍼에서 새우깡을 골라 그 작은 가방에 꾸역꾸역 넣으셨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서울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가방에서 어떤 것을 꺼내시던 기쁘게 받았다.  

그 큰 사랑에 감히 내가 어떤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어른이 되고, 서울을 밥 먹듯이 오고 가게 된 후 지하철에서 백팩을 멘 할머니만 보면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 자꾸 눈길이 간다. 

그리고 저 가방 안엔 분명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무언가가 잔뜩 들어있겠지-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것은 분명 당신보다 큰 백팩처럼 크고 무거운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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