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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note Dec 09. 2019

[지하철 생활자] 31.마지막 퇴근길의 기분


최근 좋은 기회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토록 바래왔던 마지막 퇴근 길.
2년 동안 인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오랫동안

이 날을 꿈꿔왔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내일은 출근하지 않아도 생각하면 신나다가도
좋은 동료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아쉽고,
복잡 미묘한 것치곤 꽤 덤덤한 마음이라 해야 할까.


원래 2주 정도는 더 근무하고 이직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퇴사 의사를 밝힌 후 2~3일 만에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정에 부랴부랴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며 퇴사를 준비야 했다.
그때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어질러진 마음들은 퇴근길 지하철에 오르고 나서야 널브러진

A4용지를 주워 담는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이 떠올랐다.
인생에서 이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회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회사가 싫었지만, 이런 곳엔 도저히 안 어울릴 것 같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들과의 이별이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귀한 사람들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멋진 동료들이 있어 많은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다시 만나자 약속하면서도 나도 그들도 그 약속을 지키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 아쉬움이 컸다.


회사에서 짐을 정리하고 보니 딱 쇼핑백 두 개 분량의 짐이 나왔다.
나는 매일 내일 퇴사할 사람같이 습관처럼 짐을 싸곤 했다. 좋아하는 피규어도 거의 퇴사하기 직전에서야 며칠 책상 앞에 잠깐 올려 두었고,

책상 위에도 서랍장에도 최소한의 물건만 두었다. 언제든 가방만 메고 나서면 회사를 나올 수 있도록 늘 나만의 준비태세를 갖춘 것이다. 그래 봤자 쓸모없는 일인걸 알지만,
그냥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퇴사하게 되니 하루도 안돼 끝난 퇴사 절차와 너무도 단출한 짐이 후련하면서도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위해 2년을 속앓이 했구나.'

인천 지하철을 타며 참 많이 웃고 울었는데
벌써 마지막 퇴근길 지하철.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더니 팀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쓸 때 눈물이 다 마른 건지
나는 꽤나 덤덤하게 퇴근길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루 왕복 열 번의 환승.
익숙했던 역을 지날 때마다 서툴고, 불안하고, 서글펐던 그동안의 내 모습도 흘려보내며 나는 조금 단단해졌을까?
긴긴 장정을 끝에 오늘은 이별의 지하철이지만,
새로운 만남의 출발지도 데려다 줄 안산역에
도착.



마지막 퇴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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