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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note Mar 13. 2021

우리는 이미 모두 잘 살고 있다.


주말 아침 뜻밖의 카톡이 도착했다. 

대학시절 미대 편입 준비를 같이 하던 친구였다. 

친구는 같이 편입 준비를 하던 또 다른 친구와 상괭이 이야기를 하다가 

내 생각이 나서 안부 차 연락했다고 했다.


상괭이는 편입 시절 미술학원 선생님이 내 이마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며 붙여주신 별명이었다.

선생님이 늘 "상괭아"라고 부르니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날 상괭이라고 부르곤 했다. 

카톡을 위로 올려보니 이 친구와 마지막으로 톡을 주고받았던 때가 2016년이었다. '


재밌는 건 그때도 톡을 보낸 건 이 친구였고, 

5년 전에도 오늘처럼 상괭이를 보다가 내 생각이 났다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참 한결같은 내 친구. 

예전 카톡을 잠시 올려다보니 당시 2년 차 기획자였던 나의 귀여운 푸념들이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미대에 진학해 그림 그리는 잡지사 에디터가 되고 싶었던 나는 편입 실패 후 감성 제품 전문 종합쇼핑몰에 에디터로 취직했다.


제품 홍보 콘텐츠 매거진 제작을 중심으로 이벤트 기획 관리, 제품 광고 영상 기획 등 

이것저것 정신없이 기획일을 배웠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친구와 나눈 톡에서 나는 최근 반강제로 영상기획팀에 들어가면서 콘티를 짜고, 

직접 연기도 하고, 소품도 만들고 하는데 영상은 정말 나랑 맞지 않는다며 그냥 경험 삼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SNS 광고 일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유튜브 영상을 기획하고 가끔 출연도 하고 있다.

광고는 역시 나와 맞지 않는다며 이미 광고인이 돼버렸으면서 

애초에 난 광고인이 될 생각이 없었다고 강조하고 있는 요즘의 나와 너무 똑같아서

어제 보낸 톡이라고 해도 믿겠다 싶었다.

그리고 5년 전에도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니

지금의 고민이 그냥 잘 살고 있다는 증거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친구는 대학 졸업 후 현재는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를 통해 같이 다니던 나머지 두 명의 친구들에 대한 소식도 들을 수 있었는데,

한 명은 일을 하며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했다. 

그 둘은 편입을 준비하면서도 진심으로 그림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게 너무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인스타그램을 통해 눈치는 챘지만 

아직 붓을 놓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우리는 잠시 서른한 살이 되어버린 우리의 나이에 대해 때늦은 호들갑을 떨고, 

학원에도 인사드리러 가자며 얘기하다가 조만간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은 하지 말자며 

또 보고 싶어 지면 서로 연락하자는 말과 함께 각자를 닮은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들 잘 살고 있구나, 다행이다. 

그때는 미대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었는데.

합격하지 못했을 때에 대비한 계획을 세워놓으면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봐 합격할 생각만 했었는데.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2시간씩 그림만 그렸던

우리는 4명 중 1명만 합격했지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탈히 지낸다는 소식이 진심으로 다행인 요즘. 


모두 아무 일 없어 다행이다.

우리는 이미 모두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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