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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억 달러의 ‘스마트팜 베팅’이 왜 실패했을까?

디지털 농업의 신기루: 스마트팜이 태국 농민에게 남긴 것은 알림뿐이었다

Digital farming’s false promise: Why Asia’s US$180B bet on agritech-driven farming is failing smallholders

태국의 농업 위기는 국경을 넘어선 문제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상 이변이 겹치며 세계 쌀값은 47%나 치솟았지만, 태국의 생산성은 제자리다.
국가 평균 3.1톤/헥타르. 이것은 베트남과 비교해 매년 약 23억 달러의 수출 손실을 의미한다. 경쟁국 베트남은 효율적인 농업 기술 투자로 5.8톤/헥타르까지 끌어올렸고, 2025년에는 태국을 제치고 세계 2위 쌀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태국 정부가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한 ‘스마트 농업’ 프로그램이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현장에서 만난 소농 Somchai Thanakit의 스마트폰에는 농업 앱 알림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수확량은 3년째 제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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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은 쏟아지는데, 나는 뭘 믿어야 하죠?"


Pathum Thani 주의 3대째 쌀 농민 Thanakit. 스마트폰, 토양 센서, 위성 이미지, 날씨 앱, 시장 정보···그에게 있어서 스마트 농업은 혼란스러운 알림의 연속이었다.

“알림이 너무 많아서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하늘만 봐도 알았는데, 지금은 앱 다섯 개가 다른 말을 해요.”

정부는 2017년 ‘스마트팜’ 정책을 내세웠고, 120만 농가가 등록했다. 하지만 실제로 꾸준하게 사용하는 농가는 25%도 안 된다.
디지털화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도시 엔지니어들이 만든 복잡한 앱은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농민들은 화려한 디지털 ‘페라리’ 대신, 믿고 쓸 수 있는 ‘자전거’같은 도구가 필요하다.


왜 아시아 소농은 디지털에 속았나


ASEAN 각국은 2010년 이후 1800억 달러를 농업 디지털화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생산성 변화는 미미했다. 태국의 농업 총요소생산성(TFP)은 연 0.8%밖에 늘지 못했고, 이는 아시아 식량안보에 필요한 2.1%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소농은 전체 농가의 80%, 아시아 2억 가구 중 15% 이하만이 실제로 디지털 혜택을 받았다.

태국의 디지털 격차는 과일·쌀·고무·카사바 등 농업 수출국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더 깊어졌다. 과일은 생산 후 손실만 30%를 넘는다. 소농 40%는 여전히 공식 농업지도 서비스조차 받지 못한다.


"스마트"가 아니라 "현장" 중심이어야 했다


정책 실패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장과의 괴리다.
정부, 기업 모두 농민과 제대로 대화하지 않고 도시의 논리로 앱을 설계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플랫폼은 ‘농민 중심 설계’가 아니라 엔지니어 중심이다.

알림, 센서, 위성 데이터... 농민은 주체가 아니라 정보의 소비자가 됐다.

2023년 태국의 대홍수로 인터넷이 끊기자, 수천 명 농민은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관개 시스템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인간의 감각과 전통지식이 알고리즘에 종속되면서 "디지털 소작농"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실질적 혁신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지만 희망도 있었다.
2021년 창업한 Bangkok Silicon의 ‘BKS Agrichat’은 현지 방언, 음성기반 추천, 실제 농민과의 필드 테스트를 거쳐 단순한 이진(yes/no) 조언을 제공한다.
인도의 CropIn 역시 지역관습, 문화, 날씨를 반영한 ‘문맥지능’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실제 농민 인터뷰·필드 테스트 의무화

농업 데이터의 내국 저장 및 보호

혁신보다 통합(기존 은행, 협동조합 등과 연계)

농촌 디지털 리터러시 강화


현장에서 다시 답을 찾으려면

기술은 농민을 더 '디지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디지털을 더 '농민답게' 만들어야 한다. 1800억 달러의 신기루는 지금도 ‘알림 폭탄’만 넘치게 하고 있다.

테크 산업이 아닌, 농민을 위한 현장 중심 혁신.
소농의 목소리로부터 다시 답을 찾는 것이
아시아 농업의 진짜 혁신이다.


에필로그

알림이 쏟아지는 논밭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소농을 위한 ‘현장 중심’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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