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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16. 2017

너를 좋아해

지금은


우리는 종종 새로운 상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거기서 피어나는 일시적인 호감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뿐만 아니라 선호와 기호, 외로움과 성욕처럼 비교적 사랑과 구분하기 용이한 것들조차 사랑이라고 믿을 때가 있다.


내가 이토록 또렷하게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들에 테두리를 지으려는 걸 보면서 누군가는 그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랑은 본래 정의할 수 없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호기심과 호감, 선호와 기호, 외로움과 성욕이 한데 섞여서 사랑이 될 수는 없는 거냐고 내게 되물을 수도 있다.

사랑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감정들에게 조금 너그러워질 생각이 없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나도 사랑을 유난스레 진지하게 대할 생각이 없다. 아직 그 정도의 깜냥이 없다. (그리고 조금 촌스럽다고 할까)

무엇보다도 나는 사랑을 열정적이거나,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리고 또 숱한 이십 대가 그러하듯 사랑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채로 사랑하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 나에게 되묻는다면

아마도 못 이기는 척 그가 원하는 답을 들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아주, 아주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된다.


사랑이 아니라

밀물과 썰물처럼 흘러왔다가 흘러가는 것을

엎질러진 알코올램프처럼 가벼이 증발하는 것을

겨우내 볕을 쬐지 못한 화초처럼 시드는 것을

휘영청 밝았던 달빛 서른 번 뜨고 지면서 그믐달처럼 사그라드는 것을

창에 뱉은 더운 입김처럼 의미도 없이 희미해지는 것을


흘러가는 것

증발하는 것

시드는 것

사그라드는 것

희미해지는 것

을 보 입술을 꼭 다물고 외면해버리기에는 나는 너무 어리고


흘러가는 것

증발하는 것

시드는 것

사그라드는 것

희미해지는 것

을 보면서 엉엉 소리 내 울면서 도망치기에는 나는 너무 나이를 먹었다.


나는 외면도 할 수 없는 나이

나는 도망도 칠 수 없는 나이



하지만

나는 거절이라는 새초롬하게 무례한 인사를

이토록 단정하게 말할 수 있는 나이


너를 좋아하지만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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