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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Sep 20. 2018

사유의 폭력

....... 예...... 비겁한 변명입니다.

 글쓰기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글이 쓰고 싶어 지면 글 앞에 앉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는 마치 발작처럼 글을 써 내려갔고 할 말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처럼 결론을 향해 내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글의 얼개를 툭 뱉고 몇 개의 무딘 단어들만 벼리어 예리한 단어로 만들고 나면 얼추 읽기에 나쁘지 않은 글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글이 전혀 써지지 않는 때도 있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의욕 자체도 희박한데 기껏 맘먹고 앉은 노트북 앞에서도 글의 파편에 불과한 단어들만이 머릿속에서만 맴돌다가 흩어지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글쓰기의 요정이 떠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간 자조 섞인 고민 끝에 나는 알았다.

얄궂은 내 친구, 글쓰기 요정의 정체를



“진리 찾기는 비자발적인 것의 고유한 모험이다. 사유하도록 강요하고 사유에 폭력을 행사하는 어떤 것이 없다면 사유란 아무것도 아니다.”
- Gilles Deleuze 질 들뢰즈

 




그렇다. 들뢰즈에 의하면 폭력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자발적인 사유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유는 위력에 의해 시작되며, 폭력을 휘두르는 무언가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것은







그래서 이하에서는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 극에 달했을 때를 소개한다. 다소 중2병스럽게 오글거리는 다크 한 감성이 읽혀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왜냐하면 정말로 중학교 2학년 때 썼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나는 살아생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괴로웠고 동시에 억울했다. 억울해서 괴로웠고 괴로워서 억울했다. 매일 밤을 울면서 잠이 들었고 그 상태로 매일 아침 새날이 시작되는 것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내색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은 폐허나 마찬가지로 황폐했다. 가족들은 나처럼 고통에 신음했고 친구들은 나의 변화에 대해 무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만은 슬픔에서 빗겨 난 듯이 무감한 얼굴을 하고 차려진 아침밥을 꼭꼭 씹어 넘긴 뒤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나는 2년을 꼬박 그렇게 살았다.


그때 쓰인 글이다. 이것이 고슴도치 어미의 마음인가. 비록 부족한 글이지만 중학교 2학년이 썼다고 하기에는 고심 끝에 고른 단어들의 수준도 상당해 보이고 나름대로의 통찰력이 돋보인다는 생각이다.

그렇다. 13년 전 나는 운명이 휘두르는 끔찍한 폭력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사유를 시작했고, 사유하지 않는 시간에는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아서 사유가 필요했다. 나는 거의 날마다 글을 뱉어냈다.


그것이 내가 조금 부끄러워도 이 글을 소개하는 이유다.

나는 15살 때보다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이 알지만 그때만큼 절박하게 사유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 인생의 유일한 사유의 흔적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폭력적 사유의 기록




<관계>

비겁하다. 비겁하고 약하다. 모든 사람은 원래부터 너무나도 약해 빠져 있다.

그러나 서로와의 관계를 통해, 익숙해짐을 통해

조금씩 강해지고 조금씩 알아나가는 것 일뿐.


그래서 그 익숙한 관계가 깨지는데서 사람들은 가장 많이 다치고 가장 많이 아파한다.

그래서 그 익숙한 관계라는 것에 아주 잠시, 아주 사소한 그런 갈라짐이 생긴다 해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아파한다.


결국 그런 아픔은 서로서로 줄 수밖에 없고 그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아픔인데도

사람들은 비겁하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 관계에서 낙오되었다고 생각해버리기 십상이다.

자신이 주었던 상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그저 자신이 받은 상처가 아플 뿐


아파하면서 웃는 얼굴로 관계를 지속해나가면서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치고 사람과 겉모습으로 부대끼면서 생채기가 난다.


관계가 끝내기를 겁내 하면서도 끝나지기를 겁내 하면서 끝내주기는 원치 않는다.

끝내도 자신이 먼저 끝나게 하길 원한다.


너의 일방적인 끝보다야 계산적인 나의 끝이 덜 아프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다.



<과거>

과거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면과 동시에 기억이라는 지나치게 사실적인 면까지 동시에 안겨주기 때문에.

그리고 추억에 집착하게 하고 기억에 괴롭게 하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올 수 없고 언제까지라도 거기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로 인해 아파하고 지쳐한다.


이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만 없었어도...

이럴 줄만 알았어도...


알았다고 해도 결국 후회를 남기고 결국 과거가 되어버릴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마음을 뺏긴다. 현재는 과거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현재를 계속 후회하게끔 만들며 과거를 후회한다.

후회... 후회... 후회... 끝없는 후회는 어리석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끝없는 그리움은 마음의 메마름을 온몸으로 지탱해야 한다. 과거란 것은 흉터와도 같아서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그 시절은 계속해서 떠오른다.


과거의 관계들과 과거의 믿음들과 과거의 기억들이 과거에서 빠져나와 나를 죽이려고 한다. 과거란 무서운 것이다. 가지고 있으면서 피를 토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다.



<미래>

미래는 위험한 희망을 던진다.


... 할지도 몰라

... 할 수도 있어

... 그럴지도 모르지


언제까지나 불확실할 미래는 달콤한 희망을 던진다.

사람들은 애써 믿으려 한다.


믿지 않아 막막하고 깜깜한 절망에서 질식당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래서 자꾸 나아가는 미래에 매달린다. 그것은 소망과 희망을 숨 쉬게 하지만 현실은 없다.


현실은 그저 어둡고 침침하고 조금의 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만큼

암담하고 참혹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더 미래에 매달린다.

미래에서 눈을 돌리면 자신의 현실이 그대로 웃음 짓고 있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억지로 살아가면서 헛된 미래에 손을 뻗으려고 하면서 사람들은 관계를 깨뜨린다.


주위에서 눈을 돌려버리고 미래에 눈이 멀어 관계라는 것은 이미 과거형이 되기 때문에.

과거와 현실에 배신당하고 남는 것은 어차피 미래뿐.


되돌아갈 수도 없는 길에서 사람들은 출구를 찾아 헤맨다.

확실치 않지만 아프기는 싫으니까. 도망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다.




덕분에 나는 꽤 괜찮은 어른으로 자랐다. 설익은 사유였어도 사유는 그 자체로 과정이자 결과였고, '진리'까진 못되더라도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먹고 나는 성큼성큼 자랐다. 정신적인 나이와 신체적인 나이와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불일치한다는 것이 15살 나의 비극이었다.


살아가면서 나는 종종 그때의 비극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었다.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타고난 운명에 기대어 실패와 아픔, 고통과 불행 같은 것들의 존재를 모른 채 천진난만한 어른이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이 인생을 통틀어 처절하고 치열한 사유란 것을 해본 적도, 필요도 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들의 알맹이가 여물지 못하고 여리디 여려 좌절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았을 때,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목격했을 때


나는 그들의 안녕한 인생에 대하여 위로를 보내며 혼자만의 우월감에 젖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자격지심, 어쩌면 질투와 시기심과 같은 질 낮은 감정으로 여겨도지겠지만) 내 생각에, 한 인간은 그가 거쳐온 사유의 깊이와 너비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생각해


아빠가 살아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15살 때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사유라는 폭력을 모른 채로 제 나이에 맞는 천진함과 유치함을 잃지 않고 자랐다면 더 좋았을 텐데

영원히 자라지 않아도 좋고 영원히 껍데기만 뒤집어쓴 채 살아도 좋으니까 아빠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결론은 만약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기기가 어렵다거나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어렵고

그래서 통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이 꽤 윤택해졌으며 고난이나 고민 따위가 없다거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그대로도 꽤 좋은 일 아닐까?




.... 예.....
제가 요즘 그렇게 살기 편하고 행복합니다....


글이 안 써져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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