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점 하나에 서버가 흔들렸다

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 13화

by KI Ki
본 작품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회사명·인물명·사건·게임명 등은 모두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


사고는 늘 평범한 오후에 시작됐다.

정말로 그랬다. 영화처럼 누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지도 않았고,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지도 않았다. 그날 오후 프로젝트실은 평소처럼 조금 어수선했고, 평소처럼 각자 바빴고, 평소처럼 누군가는 커피를 마셨고 누군가는 욕을 했다. 내 자리에서는 다음 이벤트용 드롭 테이블이 열려 있었다. 아이템 제작 재료 드롭률을 손보는 작업이었다. 숫자는 작았고, 표는 길었고, 화면은 지루할 정도로 엑셀이었다.


나는 그 작업이 좀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입사 전에는 게임회사 기획자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걸 만드는 줄 알았다. 새로운 콘텐츠를 설계하고, 시스템을 짜고, 유저들이 열광할 무언가를 상상하는 사람. 그런데 실제로 회사에서 자주 하게 되는 일은 소수점 자리를 맞추는 일이었다. 0.3을 0.5로 바꾸고, 1.0을 0.8로 바꾸고, 너무 많이 떨어지면 줄이고, 너무 안 떨어지면 올리고. 꿈보다는 조정에 가까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 조정이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는 점이다.


그날 수정한 항목은 이벤트용 제작 재료 드롭률이었다. 유저 피드백이 있었다. 필요한 재료가 너무 안 나온다는 말. 운영 쪽은 체감이 너무 박하다고 했고, 사업 쪽은 게시판 불만이 계속 올라온다고 했고, 박문태 팀장은 수치를 급하게 건드리지 말라고 했고, 윤성호 팀장은 일단 안을 정리해 보라고 했다. 그 모든 말을 거친 끝에, 나는 한 줄짜리 수치를 조정하고 있었다.


원래 값은 0.05였다.


나는 그걸 조금 올리기로 했다. 체감은 분명히 나야 하고, 그렇다고 경제가 흔들리면 안 되는 선. 그 애매한 선 위에서 손가락이 잠깐 미끄러졌다.


0.5


문제는, 내가 그 차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손이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엑셀에서 숫자를 수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기계적인 리듬이 된다. 지우고, 쓰고, 복사하고, 붙여넣고, 확인하고, 저장하고. 나는 분명 조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은 가끔, 조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쉽게 실수한다. 집중을 하고 있다고 믿는 동안 손은 이미 일을 끝냈고, 머리는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


수정 파일은 빌드 요청 폴더에 올렸다.


그 뒤로는 평범했다. 정말로.


나는 최지수 선배가 고쳐준 문서 일부를 다시 정리했고, 한정우 대리가 넘긴 운영 코멘트를 보고 공지 문구를 붙였고, 윤성호 팀장에게 회의용 안건 파일을 보냈다. 회사는 늘 여러 일이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그래서 방금 올린 파일 하나쯤은 금방 머리에서 밀려났다.


사고는 그 틈을 좋아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운영 쪽 메신저방이 갑자기 빨라졌다.


처음엔 다들 대수롭지 않게 봤다. 게임 서비스는 원래 문의가 많았다. 아이템이 안 들어왔다, 접속이 안 된다, 공지가 이상하다, 점검 시간이 왜 이러냐. 메신저는 늘 시끄러웠다. 그래서 초반 몇 줄은 아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벤트 재료 드롭량 이상 문의 다수]

[획득 수량 제보 게시판 급증]

[이거 정상 맞아요?]


그다음 줄부터는 속도가 달라졌다.


[드롭률 이상한데요?]

[10분 만에 제작 재료 수백 개 확보한 계정 있음]

[로그 확인 필요]

[이거 지금 막아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 메신저방을 보면서도 처음에는 남 일처럼 느꼈다. 뭐가 잘못됐나 보다, 정도였다. 기획팀 신입에게 서비스 사고는 아직 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처리하는 일’에 가까웠다. 적어도 그 몇 초 동안에는 그랬다.


박문태 팀장이 내 자리 뒤를 지나가며 말했다.


“누가 마지막 드롭 테이블 올렸어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등 뒤가 차가워졌다.


윤성호 팀장이 바로 내 쪽을 봤다. 나는 대답하기도 전에 모니터를 켰다. 이벤트용 테이블 파일을 다시 열었다. 숫자를 내려가며 봤다. 한 줄 한 줄. 화면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아까까진 내가 정리한 파일이었는데, 지금은 누가 숨은 그림을 던져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줄을 찾았다.


0.5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봤다.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눈에 안 들어왔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머리로는 이미 이해했는데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0.05가 아니라 0.5. 열 배였다. 열 배면 많이 나오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벤트 경제를 흔들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저… 제가 마지막 수정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박문태 팀장이 바로 모니터 쪽으로 몸을 숙였다. 윤성호 팀장도 옆으로 붙었다. 두 사람이 같은 화면을 보는 순간, 내 자리의 공기가 아주 작게 좁아졌다. 최지수 선배는 말없이 의자를 끌고 와 옆에 섰고, 한정우 대리는 운영 쪽 메신저를 계속 보고 있었다.


박문태 팀장이 낮게 말했다.


“왜 0.5예요?”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질문은 간단했는데 설명할 문장이 없었다. 실수했습니다, 말고는. 그런데 그 말은 너무 짧아서 더 무서웠다. 실수 하나로 지금 이만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니까.


“잘못 봤습니다.”


결국 그렇게 말했다.


박문태 팀장은 욕을 하지 않았다. 대신 더 안 좋은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내는 사람보다, 화를 참으면서 정확히 실망하는 사람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열 배예요. 이건.”


“죄송합니다.”


“죄송한 건 나중이고, 지금은 회수 가능성부터 봐야죠.”


그 문장으로 사고는 개인의 실수에서 회사의 일로 넘어갔다.


윤성호 팀장이 바로 말했다.


“도윤 씨, 수정본 바로 만들어요. 문태 팀장님은 회수 가능 범위 봐주시고. 정우 대리, 운영 쪽 게시판 제보 모아주세요. 지수 씨는 영향 계정 샘플 먼저 추려보고.”


사람들은 움직였다. 그게 회사의 이상한 점이었다. 누가 망쳤는지 아는 순간에도, 회사는 일단 망한 걸 정리하는 쪽부터 굴러갔다. 죄책감은 순서가 조금 뒤였다.


나는 손을 떨면서 수정본을 만들었다. 숫자를 다시 원래 값으로 내리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번엔 세 번 봤고, 네 번 봤고, 그래도 믿기지 않아서 다시 봤다. 사람은 한 번 틀리고 나면 갑자기 모든 숫자가 함정처럼 보였다.


운영 쪽 메신저는 더 빨라졌다.


[이벤트 개꿀]

[이거 막히기 전에 빨리 돌아야 함]

[커뮤니티 확산 중]

[공지 없으면 더 번짐]


한정우 대리가 내 화면 옆으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지금 공지는 짧게 가야 돼요. 길면 더 의심받아요.”


최지수 선배는 로그 샘플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생각보다 많이 퍼졌네.”


그 한마디가 더 식은땀 나게 했다. 사고는 내가 낸 건데, 그 사고의 크기는 이제 내가 상상하는 범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빌드 반영 요청이 들어가고, 회수 가능 계정 수가 추려지고, 공지 초안이 돌았다. 나는 내가 직접 쓴 숫자를 내가 직접 무서워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건 그냥 엑셀 셀 하나였는데, 지금은 게시판을 흔들고, 운영팀을 뛰게 만들고, 개발팀을 남게 만들고, 팀장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게임 회사에서 숫자는 숫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돈이고, 누군가에게는 욕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내일 회의실 분위기였다.


밤이 되어서야 긴급 점검 공지가 나갔다. 공지 문구는 놀랄 만큼 담담했다. ‘이벤트 재료 획득 수치 이상 현상이 확인되어 수정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 한 줄 안에는 게시판의 욕, 운영팀의 다급함, 개발팀의 피로, 그리고 내 식은땀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회사 문장은 늘 그랬다. 실제보다 덜 놀라고, 실제보다 덜 창피해 보이게 썼다.


점검이 걸린 뒤 박문태 팀장이 내 쪽을 한 번 봤다.


“다음부터는 숫자 하나 바꿔도 이유랑 영향 범위까지 같이 보세요.”


혼내는 말인데도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그게 더 아팠다. 화를 낼 가치도 없을 만큼 기본적인 실수였다는 뜻 같아서.


윤성호 팀장은 그 말 뒤에 딱 한마디를 붙였다.


“도윤 씨, 오늘은 끝까지 봐요.”


당연한 말이었다. 내가 낸 사고니까. 그런데 그 말 속엔 이상하게 다른 뜻도 섞여 있었다. 도망가지 말고 끝까지 보라는 말. 네 실수가 어떻게 회사 일이 되는지, 그걸 네 눈으로 보라는 말.


새벽 가까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둘 의자에 몸을 기대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모니터를 끄지 못했다. 화면에는 수정된 숫자가 떠 있었고, 그 옆에는 내가 한 번 잘못 넣었던 숫자가 아직도 유령처럼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0.05와 0.5.


고작 점 하나 하나 차이인데, 회사 안에서는 그 점 하나가 사람 얼굴을 바꾸고 밤을 날리고 서버를 흔들었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계속 그 숫자만 생각했다.


학생 때 시험문제에서 소수점을 잘못 찍으면 몇 점이 깎였다. 회사에서는 소수점을 잘못 찍으면 사람들이 남았다. 운영팀이 욕을 먹고, 개발팀이 밤을 새고, 팀장이 전화를 받고, 게시판이 들끓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숫자를 보기 전에 한 번 더 멈추는 습관이 생겼다.


좋아서 생긴 습관은 아니었다.


사람은 가끔,

한 번의 실수로

자기가 다루는 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운다.


그리고 그 배움은 대개,생각보다 훨씬 비싸다.

본문은 AI-Augmented Writing 방식을 활용하여 집필되었습니다. AI는 초안 생성, 구조 재배열, 밀도 조정, 중복 검토 등의 보조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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