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내민 손끝에 맺힌 흉터

사과라는 문장, 그 너머의 진실

by 자신을사랑하기

제28화. 내민 손끝에 맺힌 흉터, 선생님의 주저함에 대하여

학교폭력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이들과 부모님만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의 손을 맞잡으려 애썼던 선생님들의 찢겨진 마음도 함께 남습니다. 과거에 선생님은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를 이끄는 '교실의 어른'이었지만, 사법화된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 선생님은 언제든 민원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태로운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01. 중재의 대가는 '편파성'이라는 낙인

과거에 선생님은 아이들이라는 나무가 서로 엉키지 않고 곧게 자라도록 살피는 **'교실의 조경사'**였습니다. 갈등이라는 비바람이 불면 지지대를 세워주고, 잘못 자라는 가지는 아픔을 감수하며 쳐내어 화해라는 꽃을 피우게 돕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이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보려 대화를 시도하면, 어느 한쪽 부모로부터 날 선 항변이 돌아오곤 합니다. "왜 우리 애한테만 사과를 강요하시나요? 지금 저쪽 편드시는 거예요?" 선생님의 중재 노력은 순식간에 **'편파적 개입'**으로 둔갑합니다. 화해를 권유하는 다정한 말은 '강요'가 되고, 양쪽의 입장을 세심히 들어보려는 시간은 '조사 미진'이라는 비난의 표적이 됩니다. 아이들을 위해 퇴근 시간을 미뤄가며 이어갔던 상담은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동학대'라는 차가운 서류가 되어 돌아옵니다.


02. '방어적 교육'이라는 서글픈 생존법

민원과 소송의 파도에 한두 번 휩쓸리고 나면, 가장 열정적이었던 선생님조차 본능적인 **'방어 기제'**를 작동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옷 속에 숨겨진 녹음기와 학부모의 실시간 감시는 선생님을 교실 안의 '투명 인간'으로 만듭니다. 나의 모든 발언이 박제되어 법적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공포는 선생님의 교육적 직관을 마비시킵니다.

"아이들이 다투고 있을 때, 제 머릿속에는 '어떻게 화해시킬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민원을 안 받을까'가 먼저 떠올라요."

결국 선생님들은 매뉴얼이라는 안전한 성벽 뒤로 숨는 길을 선택합니다. "학생들끼리 사과하고 싶어 해도 제가 직접 연결해 줄 수 없습니다. 절차를 밟으세요." 이 말은 선생님이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존 선언입니다. 교육적 상담보다 행정적 절차를 우선시하는 '로봇 교사'의 탄생은 결국 우리 아이들이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박탈합니다.


03. 쌓여가는 상처, 멈칫하게 되는 손길

선생님들이 예전처럼 아이들 사이를 파고들어 중재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숱한 민원과 불신에 베여버린 **‘마음의 흉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경사가 나무를 가꾸다 가시에 찔리듯, 교육적 선의로 내밀었던 손이 날카로운 공격이 되어 돌아오는 경험이 반복되면 그 상처는 움직임을 제약하는 통증이 됩니다.

갈등하는 아이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려다가도, 문득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악몽이 선생님의 손끝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이 손을 내밀었다가 또다시 다치지는 않을까?’ ‘진심 어린 조언이 또 다른 소송의 빌미가 되지는 않을까?’ 교육자가 아이의 상처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이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선생님의 손길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차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04. 스승의 자리를 되찾아주는 공동체의 신뢰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스승의 모습이 '무결점의 행정가'입니까, 아니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게 흙을 고르는 조경사'입니까? 선생님이 민원의 공포 없이 아이들의 상처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이제는 공동체가 신뢰의 울타리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안심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을 수 없다면, 학교폭력의 해결은 영원히 행정의 늪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과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것은 법의 강제성이 아니라, 아이의 눈동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바라봐주던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입니다. 그 시선이 완전히 거두어지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가 선생님의 멍든 가슴을 먼저 어루만져야 할 때입니다. 선생님이 주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달려갈 수 있을 때, 우리 아이들도 비로소 폭력의 그늘을 벗어나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한 물음]

나는 내 아이를 위해 선생님의 정당한 훈육조차 '민원'이라는 무기로 꺾어버린 적은 없나요?

선생님이 갈등의 중재자가 아닌 '행정의 대리인'으로 남게 된 책임이 우리 사회의 불신에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진정 원하는 스승의 모습은 '무결점의 행정가'인가요, 아니면 '아이를 사랑하는 조경사'인가요?

본 도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이나 심리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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