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거부할 권리와 배제

사과라는 문장, 그 너머의 진실

by 자신을사랑하기

제27화. 거부할 권리와 배제: '피해자'가 된 가해자의 역설

학교폭력 심의실에서 가장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를 넘어 **'이것이 정당한 거리 두기인가, 아니면 교묘한 따돌림인가'**의 문제로 번질 때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친구들이 곁을 떠났음에도, 그 결과만을 두고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 어른들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01. '개인의 취향'이라는 투명한 성벽

"누구와 친구가 될지는 제 자유 아닌가요? 저는 그냥 쟤랑 성격이 안 맞아서 같이 안 노는 것뿐이에요."

심의 현장에서 흔히 들리는 논리입니다.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피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취향'이라는 방패 뒤에는 종종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습니다. 혼자서 누군가를 피하는 것을 넘어, 교실 내 권력관계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한 아이를 '유령'으로 만드는 것은 명백한 폭력입니다.

이것은 법이 정하지 않은 '사회적 종신형'입니다. 급식실에서의 짧은 눈짓, 단톡방에서의 미묘한 침묵은 피해자의 영혼을 실시간으로 도려냅니다. 잘못에 대해 대가를 치렀음에도, 혹은 실수를 깨닫기도 전에 공동체가 찍어버린 '영원한 가해자'라는 낙인은 투명한 성벽이 되어 아이를 질식시킵니다.


02. 인과응보적 고립: 원인을 망각한 피해의 호소

그런데 최근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역설적인 양상도 자주 목격됩니다. 평소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거나, 이기적인 태도로 공동체의 규칙을 어겨온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참다못한 친구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둘씩 그 아이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고립된 아이는 자신의 '원인 제공'은 망각한 채, 친구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결과'만을 들고 상담실을 찾아옵니다.

"쟤들이 저만 빼고 놀아요. 이거 왕따 아닌가요?"

아이의 눈에는 친구들의 '자기 방어적 거리 두기'가 '부당한 집단 따돌림'으로 비칩니다. 부모님 역시 "우리 애가 좀 거칠긴 해도, 애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무시하는 건 폭력 아니냐"며 학교를 몰아세웁니다. 가해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결과의 피해를 주장하는 이 기묘한 역설 앞에서 교육적 정의는 길을 잃습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본인은 끊임없이 환대받기를 바라는 오만이 '피해자'라는 이름표 뒤로 숨어버리는 순간입니다.


03. 방어와 공격의 경계: 아들에게 건넨 '1대 1'의 지혜

이런 상황에서 책임은 어디가 더 클까요? 업무담당자로서 제가 내린 결론은 **'최초의 원인'**과 **'대응의 방식'**을 엄격히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제 아이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게임 중 갈등이 생긴 친구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다른 친구들과 힘을 합쳐 다수가 그 친구 한 명을 불러내어 따지려 하더군요. 저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조언했습니다.

"상대방이 다수에게 잘못을 했더라도, 여러 명이 그 친구를 불러서 한꺼번에 몰아세우는 건 그 자체로 괴롭힘이 될 수 있어. 정말 그 친구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여러 명이 아닌 혼자서 진심으로 다가가는 '1대 1'의 방식으로 이야기해보렴."

"네가 잘못했으니 우리는 너를 투명 인간 취급하겠다"거나 "우리가 떼로 몰려가 네 잘못을 성토하겠다"는 대응은 정당한 방어를 넘어 또 다른 형태의 가해가 됩니다. 친구들이 져야 할 책임은 '놀아주지 않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을 **'모욕적이고 공개적인 처벌'**로 변질시킨 것에 있습니다.


04. 진정한 회복: 각자의 거울을 비추는 일

진정한 회복은 가해 학생이 조치를 이행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립된 아이에게 "친구들이 너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다"라는 차가운 진실을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친구들에게는 "누군가를 멀리할 자유는 있어도, 그를 조롱하거나 유령 취급할 권리는 없다"는 공존의 선을 그어주어야 합니다.

사과는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고립된 아이는 자신의 무례함이 친구들의 마음을 어떻게 닫게 했는지 사과해야 하고, 친구들은 그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서 비인격적인 배제가 섞여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억지로 손을 잡게 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각자가 쥐고 있는 책임의 무게를 정직하게 거울에 비춰보는 것, 그것이 '왕따'라는 오해와 '거부'라는 권리 사이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시작입니다.


[나를 향한 물음]

내가 주장하는 '싫은 사람과 놀지 않을 권리'가, 혹시 누군가를 향한 '공개적인 처벌'로 변질되고 있지는 않나요?

부모의 보호하려는 마음이, 혹시 아이가 자신의 '원인 제공'을 성찰할 기회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단죄의 쾌감'을 가르치나요, 아니면 '서툰 복귀를 기다려주는 공존의 선'을 가르치나요?

본 도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이나 심리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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