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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May 10. 2024

나만의 인프라

사계절만 살아보면

 제주에 내려온 지 어느덧 일 년이 훌쩍 넘었다. 어제는 침대에 누워 제주에서 썼던 지난날의 일기를 펼쳤다. '좋다'와 '싫다'로 써 내려간 일기장에는 일희일비의 한 해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뜨뜻미지근한 시간을 보낸 것보단 감정을 명확하게 느꼈던 지난 일 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한 해였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감정변화의 간격이 짧았지만 괜찮게 살았던 제주 생활이었던 건 확실했다. 일상이 반짝였고 흐르는 계절을 간과하지 않고 즐기려 했으니, 사계절을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2년째 제주생활로 들어서면서 이미 겪은 제주의 사계절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않은 제주는 더 이상 일상에서 반짝이지 않았다.

머무를 것인가? 떠날 것인가? 를 생각했던 올해 초, 머무르는 선택을 한다면 삶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제주는 여전히 언젠가는 떠날 곳이었고, 그렇다면 이곳에서의 시간은 무한을 의미하진 못했다.

 끝이 있는 것에 아쉬운 감정 하나 남지 않는 것은 없다. 끝이 있어 간절할 수 있다는 것을 작년에 배웠고, 그 마음은 일상에 녹아들었다.


 주말이면 자주 할 일이 없어졌지만 굳이 제주에서 누군가(친구, 지인..)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인터넷) 카페를 들어가 보긴 했지만 억지스러운 만남들은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으면서 이미 피곤 해 졌다.

 그래서 요즘 취미는 도서관 투어다. 평일에 한라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주말에 함덕 바다를 보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조천 도서관에 반납했다. 또 어느 날은 탐라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주말 바다가 보이는 애월 도서관에서 마지막장을 덮고 반납했다.

 그것도 심심해지면 어느 날은 초록이 보이는 카페에서 또 어느 날은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날이 좋은 날에는 돗자릴 펴고 어딘가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별거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의 인프라는 서울이 아니라 제주에 형성되어 있었다.


 제주가 좋아 이곳에 왔지만 싫어져 떠나는 사람도 보았고 제주가 좋아 제주에 와서 더욱 좋아졌다는 사람도 보았다. 제주를 떠날 준비를 한다면 5월이 되기 전에 떠나야만 한다.


누구든 5월부터 제주를 좋아하게 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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