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1

오래 전 이야기

by 천지

1. 가라오케​



서해는 열 살 무렵에 군포에서 철원으로 전학했다. 산 너머에서 끊임없이 탄환 소리가 났다. 서해는 움츠러드는 기색도 없었다. 미동도 없이 어깨를 펴고 있었다. 상사리에서 나고 자란 이들보다 소음에 무던했다. 졸음이 가시고 나면 서해의 좁고 단단한 어깨가 눈에 걸렸다. 서해의 그 단직함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금시에 서해를 받아들였고. 나 역시 서해를 추종했다. 칠판이 잘 보이지 않는 두 번째 줄의 맨 뒷자리에서였다. 곧게 자라나는 서해의 어깨를 눈에 담았다.

교복을 입을 무렵에는 등이 굽었다. 상사리의 겨울은 추웠기 때문이다. 군부대의 훈련 소리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고. 목소리가 큰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도 등이 굽었다. 서해는 사춘기에 키가 크며 항상 뒷자리에 배정받았다. 나와 달리 지구가 눌러대는 힘에도 어깨를 곧게 펴고 있었다. 그 모양새를 훔쳐보고 싶었다. 털이 삐져나온 가디건을 끌어모으며 생각했다. 서해의 시야에 내가 걸릴 것이라고. 서해의 앞 책상에 앉아 부지런히 어깨를 폈다.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가디건의 소맷자락이 연필 자국으로 시커멓게 변했고. 내 키도 마디 반절만큼 더 자랐다. 무릎이 욱신거리는 성장통을 겪었고.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상사리를 떠나는 이들 중 하나가 되어 상경했다.

이따금 서해에 대해 생각했다. 이 조그마한 곳에서. 아저씨들의 팔에 부대꼈다. 커다란 라벨이 붙어 있는 임페리얼을 마셨다. 그맘때쯤의 나는 무술이나 초자연적인 점괘에 푹 빠져 있었는데. 가씨들 사이에서 용하다는 점집이 알음알음 퍼져 나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고. 모든 자극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양립해서이기도 했다. 지루했다. 지루한 팔자에 대해 생각한다. 무의식이 첫사랑과 공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늙어 버린 서해의 얼굴을 상상하며 테이블을 세팅했다.


녹은 얼음을 새것으로 채워 넣기 위해 웨이터를 부른 차였다. 좁게 열린 문 틈 사이로 익숙한 어깨가 보였다. 또래 여자들보다 훌쩍 자란 키에 좁은 골격. 서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분명히 그것은 서해였다.

그곳에 서해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내 마음속에 머무르던 것은 미묘한 동질감과 기꺼움. 서해가 같은 곳에 있음에 기꺼워하는 마음이었다. 반가움에 젖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한 우연에 대해서는 생각치 못했고. 곧장 서해에게 어깨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서해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해에게는 한 살 어린 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서해보다 비범하고 출중했는데. 동생의 일본 유학을 위해 서해의 대학 진학을 포기할 정도였다. 가족들은 동생의 영특함에 부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서해 역시 동생의 남다른 팔자에 매료되었으며.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동생에게 최선을 다했다. 일본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발단은 서해의 어머니가 갔던 신당에서였다. 시끄러운 소음이 귀를 메웠고. 서해의 어깨는 그제야 굽어들었다. 신방울 소리가 끊이지를 않아서였다. 어깨가 자꾸만 말렸다. 점사는 명쾌했다. 동생이 물을 건너면 안 된다는 점지였다. 한국을 벗어나면 절대 안 된다. 물을 건너면 불행이 모두를 잡아먹으러 올 것이라고 했다. 서해는 소음이 잦아드는 곳을 향해 머리를 최대한 깊게 수그렸고. 두려움에 바닥을 기어다니느라 어떤 점사도 듣지 못했다.


서해의 이름이 일본으로 향하는 것은 신당을 나온 이후에 결정된 일이었다. 서해와 동생은 이름을 맞바꿨다. 동시에 팔자를 바꾼 것이다. 동생의 일본에 대한 갈망이 굳세었으므로. 동생의 눈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필연임을 알았다고 했다.

이후로는 모든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듯 불행이 연쇄되어 찾아왔다. 물을 건넌 동생은 종적을 감추었고. 서해가 찾아갔던 신당 역시 사라졌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신벌을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동생의 부고 소식을 듣고 얼마 못 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이 서해가 가라오케에 있는 이유였다. 상사리가 아닌 서울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유였고. 나는 서해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서해의 등이 굽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