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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푸딩 Aug 26. 2015

산책 #2

- 함께하는 그들만의 순간

 속이 울렁거리던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덮은 그것이 자신의 손 전체를 잠식시키는 것을 느끼고 혼비백산했다. 지금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이 맞는지 생각할 때쯤, 그녀의 생각은 그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로 뻗어 나갔다. 그러자 다른 의미로 그녀의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다. 남녀가 아무 감정 없이 손을 잡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혹 그가 내 마음을 알아챈 것인가? 나의 행동이 읽힐 정도로 단순하고 티가 나는 행동이었던가? 수많은 물음표를 생성하는 물음이 그녀를 괴롭힐 때쯤 그의 음성이 그녀의 물음표들을 한쪽에 밀어냈다.


 “나는-”,


 말을 끄는 그를 바라보기 위해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보게 되면 두 손이 떨어질 것이라는 그녀의 예상을 깨고 그는 잡은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러나 그녀가 바라본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의도도 알아챌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시선에도 앞만 바라봤다.


 그가 무겁게 닫고 있던 입을 열자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지금 그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 그러나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느끼기에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도는 듯했다. 그녀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살짝 숨을 들이키는 그가 보이고, 그는 그녀의 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찰나였으나 그녀의 떨림은 사형선고의 절박함에서 결과를 이미 아는 복권 당첨의 기쁜 순간으로 바뀌는 듯했다.


 둘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보기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 온 세상에 가득 찰 만큼 커졌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예상할 수 있는 그의 말. 그녀는 기다렸다. 몇 년을 기다렸는데 몇 초쯤이야.


“우리 결혼할까?”


 예상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그의 말은 끝까지 그녀의 예상에 맞지 않았다. 그의 성급한 제안에 그녀는 여태껏 긴장하던 마음이 탁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픽 웃었다. 속내가 여실히 들어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그녀의 웃음에 귀까지 발개졌다. 그의 말 한 마디에, 그는 그 답지 않게 되었고 그녀는 그녀다움을 되찾았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목소리만 가다듬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아 팔짱을 꼈다. 그들의 산책은 다시 시작되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왜 이렇게 급해요? 난 결혼 전에 3년은 연애하고 결혼할 거야. 3년 동안 연애할 각오해요.”


 그들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 침묵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어스름하게 어두워진 늦은 저녁 하늘, 어디선가 불꽃놀이를 하는 듯 황홀한 불꽃이 팡팡 터졌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인지, 실제 저녁 하늘의 불꽃놀이인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현재 아무도 없다. 산책 중인 두 남녀는 지금 행복감에 어지러워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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