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가격 담합을 하면 어떡하나요?" (2부)

국어 학원 없이 의대에 합격한 '독서 근육'의 비밀

by Reich 라이히

지식의 갈고리가 만든 짜릿한 효능감

​지난 편에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가격 담합'을 언급해 선생님을 놀라게 했던 에피소드를 들려드렸습니다. 선생님의 그 경탄 섞인 칭찬은 아이에게 “내가 아는 것이 가치 있다”는 강렬한 효능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에게 학교는 지루하게 앉아 견뎌야 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이라는 무기를 마음껏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즐거운 시험장이자, 아는 즐거움을 확인받는 놀이터가 되었죠. 그리고 그 자신감의 기저에는, 문제집이나 학습서가 아닌, 그저 거실에서 쌓아 올린 수천 권의 페이지가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대형 서점으로 떠나는 지적 여행

​저희 집에는 전집 배달 외에도 또 하나의 철칙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대형 서점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마치 놀이동산에 온 듯 실컷 책의 바다를 유영했습니다.

​그날만큼은 어떤 책을 읽어도, 얼마나 오래 머물러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수많은 책 중 '계속 곁에 두고 소장하고 싶은 책' 딱 한 권씩을 스스로 골라 사 오게 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고르고 소유하게 된 그 한 권의 책은 아이들에게 지식 이상의 의미, 즉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고심해서 고른 책들은 아이들의 책장에서 가장 빛나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책의 향기 속에 머물렀던 유년의 기록. 대형 서점의 서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취향을 발견하고 지식을 소유하는 법을 배운 첫 번째 교실이었습니다.


입시의 승부처, 결국은 문해력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의대 입시라고 하면 수학과 영어만을 떠올리십니다. 하지만 제가 곁에서 지켜본 최상위권 입시의 실상은 조금 달랐습니다. 수학과 영어는 누구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당락을 결정짓는 ‘결정적 승부처’는 국어, 즉 문해력이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문제의 긴 지문을 읽고 출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아예 식을 세울 수조차 없습니다. 저희 집 두 아이는 입시를 치르는 동안 국어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 모두 국어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단연코 어린 시절 다져진 ‘독서 근육’이었습니다.


공부의 임계점을 넘기는 가장 즐거운 방법

학원 강의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독서량이 실전 문해력으로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윌링햄은 "지식은 새로운 지식을 붙잡는 갈고리와 같다" 고 말했습니다. 7살부터 쌓아온 '독서 갈고리'가 있었기에, 아이들은 방대한 양의 의대 공부를 버텨낼 지적 체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고액 과외가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이의 머릿속에 세상의 모든 정보가 연결될 수 있는 ‘지식의 회로’를 깔아주는 것, 그리고 그 지식이 세상과 만나 자신감으로 폭발하는 경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공부의 임계점은 생각보다 일찍, 그리고 거실의 TV를 치우는 작은 결단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많은 분이 묻습니다. "그럼 독서만 하면 무조건 의대에 가나요?"라고요. 물론 아닙니다. 독서라는 탄탄한 기초 위에, 제가 독일에서 배우고 아이들에게 적용했던 '단단한 원칙과 습관의 디테일'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화에서는 안타깝지만, 아이들이 입시까지 짊어져야 하는 방대한 학습량을 스스로 통제하게 만든 '독일식 자기주도 습관'에 대한 기억을 꺼내보려 합니다. 저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작은 힌트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갑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으로 함께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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