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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Jun 27. 2022

소중해

외할머니의 전화

#소중해

“우웅~~~ 우웅~~”

055-OOO-OOOO

지역번호가 찍힌 익숙한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끊어졌다. 외할매가 집 전화로 전화를 걸어온 거였다. 할매가 휴대폰을 갖게 된 이후 집 전화로는 전화가 걸려온 일이 없었다. 게다가 거의 전화는 내가 거는 편이기도 했고…

잠시 울리다 끊기는 전화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이 돼서 급히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할매는

 “우리 솔녀가 보고줍어서 전화 안 했나~~ 잘 있으모 됐다 끊자이~” 라며 다시 전화를 끊는다.

몽글몽글… 갑작스럽고 짧은 통화를 끝낸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생각했다. “할매가 이런 표현을 한다고??”


아흔이 넘은 외할매는 통화시간 대비 통화요금이 측정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나마도 요금제에 무료통화라 기본으로 얼마큼씩 제공되는 것은 더더욱이… 거리가 먼 만큼 서울에서 경상도까지의 통화는 초 단위로 요금이 오르는 거라 생각해 내가 건 전화도 받자 끊기 바쁘다. “아이고 우리 솔녀 고맙다~기억해줘서 고맙다~ 그 먼 데서 전화비도 비싸낀데 인쟈 끊자.” 긴 통화가 행여 서울(정확히는 아니지만)에 사는 외손녀의 재정에 큰 구멍이 생길까 바삐 바삐 전화를 끊고 다음에 오면 보자고 한다. 그리운 마음을 꾹꾹 누른 채…


그런 할매가 오늘 전화를 했다. 보고 싶었다는 그 한마디를 건네려고. 그리고는 또 바삐 전화를 끊었다 ㅎㅎㅎ 여전히 할매의 머릿속에서는 초 단위로 요금이 올라가고 있었을 거다. 그래도 전하고 싶었던 “보고 싶어서… “라는 소중한 한마디.

이름과 전화번호가 크게 적힌 금박이 떨어져 나가 각인만 남아있는 낡은 적갈색의 노트. 그 안에서 내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 돋보기를 찾아 썼을 테지. 혹여 느린 손으로 번호를 누르다 연결이 되지 않을까, 전화가 잘못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꾹꾹 번호를 눌렀겠지.


오늘 나를 보고 싶어 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게 몇이더라도 표현하지 않는 마음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나는 참 외로운 사람이지 않은가.

오늘 나는 외할매의 “보고 싶은 소중한 솔녀”다.

덕분에 외롭지 않은, 마음이 몽글몽글한 날이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소중해…


#그린그림일기 #오늘일기 #외할매의손녀

#마음표현 #그리운사람 #보고싶은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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