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100년, 200년이 지난 후, 지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겁니다. ‘화성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것이다’, ‘각 집마다 로봇 도우미가 있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다’, ‘100세가 되어도 에베레스트를 등산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할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이 기술 발달이 가져올 다양한 혜택에 대한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적인 물 부족으로 물 전쟁이 벌어졌다.
핵 전쟁이 발생하고, 농사가 불가능하고, 독에 중독되어 수명이 반 토막 났다.
세상이 몰락한 후, 우리의 삶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22세기, 핵 전쟁으로 삶이 처참히 무너져 내리고, 소수의 사람만이 물을 장악한 인류의 비극을 실감나게 그려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조질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 분노의 질주>입니다. 그가 상상한 미래는 지금까지 쌓아놓은 모든 문명이 멸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입니다.
난 너희들의 구세주다.
잿더미 같은 세상 속에서 너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
백발 머리에 무시무시한 치아를 끼고 나타난 임모탄 조, 그가 바로 인류의 마지막 도시 시타델의 주인입니다. 민둥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워보이들에게는 충성의 대가로 천국인 발할라에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건네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성 노예로 만들었으며, 죽지 않을 만큼의 물을 내려주며 사람들을 지배하는 그는 독재자인 동시에 교주입니다.
어린 시절 납치를 당해 시타델에서 자란 퓨리오사. 성치 않은 한 쪽 팔을 가졌음에도 당당히 임페라토르(최고 사령관)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그녀는 가솔린과 무기를 가져오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가스 타운을 눈 앞에 두고 갑자기 핸들을 꺾어 탈출을 시도합니다.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다섯 부인과 충성스런 워보이였던 눅스, 피주머니로 잡혀 있던 맥스와 함께 유토피아를 찾아 나섭니다.
미쳐버린 세상을 유지하려는 독재자와 그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 이들은 이렇게 쫓고 쫓기는 분노의 도로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퓨리오사와 다섯 여인들은 무엇때문에 탈주를 시도한 걸까요? 이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곳은 다름아닌 녹색의 땅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 그래서 싸움과 불평등, 살인이 사라진 곳,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는 ‘상품’으로 취급 받는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대접받는 세상입니다.
광란에 휩싸여 죽일듯 달려드는 워보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차가 전복될 것같은 사막의 모래 폭풍을 뚫으며, 오랜 시간 사막 위를 달리고 달린 끝에 만난 녹색의 땅.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그 위에 있는 것이라곤 까마귀 떼 뿐이었습니다. 메말라 버린 물 때문에 모든 식물들이 다 죽어버린,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이곳이 자신이 찾던 녹색의 땅임을 알게 된 퓨리오사는 절망합니다. 목숨을 건 이들의 모험은, 이렇게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20세기의 전쟁이 석유를 쟁탈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21세기 전쟁은 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20년 전 세계은행 부총재인 이스마일 세라겔딘가 한 말입니다. 이는 비단 한 사람만의 예측은 아닙니다. 인도의 석학 브라마 첼라니를 비롯해 수 많은 전문가들이 물 전쟁을 예고했고,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조지 밀러 감독 역시 인도 여행 중 공을 차고 놀던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물 전쟁이라는 말을 듣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인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인도,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파키스탄입니다. 두 국가는 끊임없는 갈등을 벌이고 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인더스 강 입니다. 중국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해 인도와 파키스탄을 가로 지르는 이 강 때문에, 물 사용권을 두고 두 국가는 계속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던 중 1960년, 두 국가는 수자원을 반반씩 나눠 갖는 인더스 수자원 조약을 체결하며 문제를 일단락 지었습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인도가 인더스 강 상류 지역에 수력발전용 댐을 지으면서 다시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었습니다.
인도가 의도적으로 물길을 끊고 있습니다.
우리가 카쉬미르 분쟁지역을 되찾으면 강물도 다시 흐를 것입니다.
파키스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모하메드씨의 말입니다. 이처럼 물 때문에 인도에 대한 적개심을 품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파키스탄이 이토록 물에 민감한 이유는 지리적 요인과 함께 최근 발생한 온난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메마른 땅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에 의지하고 있는 파키스탄, 특히 인더스 강 덕분에 만들어진 펀자브 주 곡창지대에서만 인구의 절반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지하수와 저수지가 워낙 적어, 인더스 강이 없으면, 파키스탄은 한 달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2008년 완공된 댐으로 인해 수량이 급격히 줄어든 것입니다. 이에 더해 최근 강수량도 줄어들면서 물에 대한 스트레스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 역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댐 건설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로 국제적인 빈축을 사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도 정부는 1998년 친환경 에너지인 수력발전을 개발할 계획을 발표했고, 현재까지 계속 추진 중입니다.
정치경제학에서는 국가 운영에 있어서 이웃 국가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육로를 통해 무역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관계가 나빠져 분쟁이라도 일어날 경우에는 큰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자원을 공유할 경우에는 더욱더 분쟁의 소지가 많습니다. 수자원 때문에 관계가 악화된 것은 인도와 파키스탄뿐만이 아닙니다. 물의 중요함을 인식한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IS)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에 있는 주요 댐을 공격해 물을 무기로 사용하며 도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수자원을 통제함으로써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현실 속 임모탄 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을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미쳐버린 세상,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이 아닙니다.
어디서나 시원한 물이 나오고, 일 년에 단 하루도 단수를 겪어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 물 만큼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다르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2050년 환경전망'보고서에서 2025년 물 기근을 겪을 수 있는 국가로 우리나라를 뽑았으며, 2050년에는 물 스트레스 수준이 OECD 국가 중 최고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놨습니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강수량은 세계 평균을 웃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강수량을 인구 수로 나누면, 수치가 뚝 떨어져 세계 평균의 1/6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계절에 따라 강수량 편차가 심한 편이어서, 사용하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물이 많아 실제는 더 열악한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2003년 우리나라를 이미 물 부족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일인 당 재생 가능한 물이 얼마나 많은가를 측정했을 때, 우리나라는 153개국 중 129위를 차지했습니다. 펑펑 쓸 만큼 물이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주요 선진국들보다 훨씬 많은 물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태국에 물 부족 대란이 벌어졌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태국이 물 부족을 겪는다는 것은 놀랍게만 보입니다. 전국 76개 지역 가운데 35개 지역에 물이 부족하다고 하니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1/4 지역이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가정용수까지 부족해 일상 생활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돗물이 중단되자 학교는 물론 병원도 운영이 중단되었고, 특히나 시간 당 1천 리터의 물이 필요한 투석실과 수술실이 문을 닫아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벼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어나면서 쌀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식량권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이 하루아침에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가뭄입니다. 예상치 못한 극심한 가뭄에 토지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바싹바싹 타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지금보다 물 부족이 더욱 심해진다면, 물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물 부족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인도 서부 지역에 사는 사크하람 바갓씨의 이야기입니다. 환갑이 훨씬 지난 그는 3명의 부인을 두고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냐고요? 아닙니다. 세 번째 부인을 얻게 된 사연은 바로 물 때문이었습니다.
물을 길어다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물 심부름을 한다’는 조건으로 여러 명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아내는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바쁘고,
두 번째 아내는 몸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물을 길러다 줄 세 번째 아내를 찾아 결혼한 겁니다.
바갓씨가 사는 마하라슈트라 주는 물이 매우 귀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만 약 2만여 가구가 물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갓씨처럼 물을 길러온다는 조건으로 ‘정략 결혼’을 하는 게 이 지역의 관례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물을 길러 오는 것은 여자들의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하라 이남 지역에 사는 많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물을 기르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 부족, 더 이상 방관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물은 생존권이자, 식량권이기 때문입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상상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현실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오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물 부족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면, 매일 양동이를 들고 물을 찾아 헤매야 한다면, 발전된 기술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물이 없다면, 모든 것이 멈추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 속의 퓨리오사의 선택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 속 녹색의 땅이 아닌, 죽음의 땅이 됐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퓨리오사는 사람들을 데리고 또 다른 땅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그 때, 맥스가 이들의 길을 막아 섭니다.
여기가 당신들의 집이야
아무리 달려도 물 한 방물 나지 않는 세상. 모두들 알고 있었습니다. 물이 있는 곳은 시타델밖에 없다는 사실을. 도망쳐 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맥스가 정확히 꼬집어 냅니다. 결국, 퓨리오사는 시타델에 돌아가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혁명을 꿈꿉니다. 이렇게 퓨리오사는 임모탄을 죽이고, 시타델을 장악합니다. 시타델에 돌아온 퓨리오사는 소수만 누렸던 물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반란을 아름다운 혁명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퓨리오사는 유토피아를 찾아 먼 길을 택하는 대신,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며, 이러한 구원은 바로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가능하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우리는 슈퍼맨 같은 영웅이 나타나 이 절박한 상황에서 나를 구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됩니다. 퓨리오사처럼 내 앞에 닥친 일을 해결해야 할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