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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따 Jul 05. 2016

외계인과 동거 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영화 <디스트릭트 9>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데 꾀죄죄한 불청객이 찾아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요구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불쌍한 마음에 처음 얼마간은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지만, 이 상황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면, 누구라도 버텨내기 힘들 것입니다. 특히나 이들이 외계인이라면요.


어느 날 갑자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외계인이 나타났습니다. 우주선이 고장 나서 왔다는 그들, 금방 갈 줄 알았지만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인간과 외계인의 불편한 동거, 영화 <디스트릭트 9>입니다.





 


손님에서 불청객으로

 

남아프리카 정부는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려 지구에 불시착하게 된 불쌍한 외계인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마련된 임시 거처가 바로 ‘디스트릭트 9’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신기하게만 생각했던 외계인은 갱단들보다 더 보기 싫은 골치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지나가는 시민을 공격하거나 가만히 서 있는 차에 불을 내고, 열차를 탈선시켰다는 소식이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자 시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릅니다. 사람들은 외계인을 거지라는 의미의 프런으로 부르며 반외계인 시위를 펼치고, 여기저기에 외계인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정부는 급기야 도심에서 200km나 떨어진 강제수용소에 외계인을 이주시킨다는 결정까지 내렸습니다.  



프런들은 토지 소유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그러니까 찾아가서 우리땅이니까 떠나라고 해야죠

정부를 대신해 외계인 업무를 담당하는 다국적연합 MNU에 근무하는 비커스는 외계인들에게 퇴거 동의서를 받아 오라는 임무를 맡고, 문제의 구역 디스트릭트9으로 떠납니다.


 

내가 저 괴물이라고?

 

여기에 사인 하세요



갑자기 집을 나가라는 말에 흥분한 프런들은 비커스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비커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인을 받는데 열중합니다. 이번 임무를 맡으며 국장으로 파격적 승진까지 한 상황에서 이 정도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의기양양하게 디스트릭트9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던 중,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합니다. 프런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다 외계물질에 노출된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기침과 구토, 코에 흘러나오는 검은 물질, 흉측하게 변해가는 한 쪽 팔, 몸은 점점 프런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천 억 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과 외계인의 조화가 완벽히 이루어진 몸, 회사는 비커스의 조직과 장기를 척출해 다른 나라에 팔 계획을 세웁니다. 수술대 위에 누운 비커스, 매스가 심장을 찌르려는 순간 다행히 가까스로 실험실에서 빠져나옵니다.


 


프런을 억압한 자, 프런을 돕다

 

하지만 괴물이 된 비커스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갈 곳을 잃은 그는 결국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프런들이 사는 곳, 디스트릭트 9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내 팔을 고쳐줘
팔을 고치려면 수송선을 타고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야 해
어떻게 하면 되는데?

 


수송선을 고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프런의 리더 크리스토퍼와 다시 사람이 되고 싶은 비커스는 이렇게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둘은 힘을 합쳐 감옥 같은 MNU 실험실에서 수송선을 고치는데 필요한 물건을 가져옵니다.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 비커스, 그러나 크리스토퍼는 다른 말을 합니다. 3년 후에 다시 돌아와서 고쳐줄 게. 이에 화가 난 비커스는 크리스토퍼를 배신하고 혼자 수송선을 타겠다며 뛰쳐나갑니다.

 

 

다른 숫자도 많은데 왜 하필 디스트릭트 9이었을까요?


뜻밖에도 우주선은 맨해튼이나 워싱턴, 시카고가 아닌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멈췄습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왜 우주선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멈췄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영화에는 이 나라의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1948년, 남아공에서는 무시무시한 정책이 실시됩니다. 소수의 백인들이 나라를 손에 넣기 위해 만든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입니다. 이 정책으로 병원, 화장실, 학교 할 것 없이 모든 시설에는 백인과 유색인종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분리 되었고, 유색인종은 자신의 거주 지역을 벗어날 때면 무조건 ‘통행증’을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백인과 유색인종은 결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966년 2월, 날로 악랄해지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큰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구역마다 거주할 수 있는 인종을 정해 놓은 집단지역법에 따라 당시 흑인들이 모여 살고 있던 케이프타운 디스트릭트 6가 백인 지역으로 선포 된 것입니다. 이로써 이곳에 살던 유색인종 6만 명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25km나 떨어진 외곽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됩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 속 프런들의 거주지역 디스트릭트 9은 디스트릭트 6를 거꾸로 뒤집어 만든 이름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의 출입을 금하는 팻말과 유색인종에게만 발급했던 통행증, 총을 들이밀며 퇴거 동의서를 내미는 MNU사람들과 불도저를 들이밀고 들어온 50년 전의 백인들,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디스트릭트 9>을 외계인 영화라고만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디스트릭트 9’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요하네스버그는 우리의 미래다

 

2009년 <디스트릭트 9>를 만든 닐 블롬캠프 감독이 한 말입니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인천공항 송환 대기실, 이곳에서 200일이 넘도록 밖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항 밖으로 한 발자국도 빠져나갈 수 없으며, 삼시 세끼 햄버거와 탄산음료로 버텨야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현대판 올드보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여기에 갇혀 있는 걸까요?

 

송환 대기실은 입국을 거부당한 외국인들이 출국하기 전까지 대기하는 장소입니다.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소리에 범죄자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범죄자가 아닌 난민 신청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난민은 누구일까요? 학업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외국인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나 전쟁과 박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입니다. 전자 경제적, 후자를 정치적인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난민의 경우는 후자를 뜻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리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기 때문에 난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바다와 국경을 넘은 난민의 수는 현재 6,530만 명에 달합니다. 1분에 24명꼴로 난민이 발생할 만큼 빠른 속도입니다. 올 상반기,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던 난민은 이미 20만 명을 넘었고, 이 중 10%의 사람들이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난민이 유럽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 도움을 청한 난민 수만 5,700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대부분이 난민 지위를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하며 이 문제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난민인정비율을 3.4%밖에 되지 않습니다. OECD 국가들이 평균 난민 신청자의 35%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에 비하면 그 비율이 매우 저조할 따름입니다. 이 수치는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제난민 살리려다 영종주민 다 죽인다!
법무부가 사기친 불법건물 난민센터, 영종주민 똘똘뭉쳐 난민센터 몰아내자

 


영종도에 난민지원센터를 만들자는 말이 나왔을 때 지역 주민들이 한 말입니다. 우리의 눈에 난민은 그저 잠재적 범죄자일 뿐입니다. 실제로 201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6.3%가 ‘난민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주선 고쳐서 떠나라고 해요
바이러스 살포해서 다 죽여버려요
무조건 딴 데로 보내요
 

프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시리아 어린이 난민이었던 아일란 쿠르디. 이 아이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국내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인 함단 아셰이크씨가 말합니다.

 

아일란의 사례는 너무 가슴 아프지만 흔한 일입니다.
내 어린 사촌동생들도 공습으로 숨졌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난민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하는 유럽처럼 한국도 변했으면 합니다.
유럽처럼 수십 만명이 아닌 수백명 수준입니다. 공짜로 이것저것 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생명의 위협 없이 잠시라도 안전하게 머물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누가 미래를 구할 것인가?


내가 도와 줄 테니까 빨리 도망쳐!

 


한 쪽 눈이 노란색으로 바뀌고, 이미 날카로운 갈퀴가 살가죽을 찢고 나와 흉측하게 변해버린 비커스. MNU 국장 시절, 그는 프런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지식이 낮아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외계인이 된 다음에서야 비로소 이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결국 비커스는 크리스토퍼가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합니다. 가까스로 우주선으로 돌아간 크리스토퍼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지구를 떠납니다. 어쩌면 희망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마음인 ‘공감(共感)’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현실에서 난민의 입장을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감대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985년 11월 14일, 부산항으로 귀향하던 배 광명 87호에 타고 있던 전제용 선장은 남중국해 부근에서 낡은 배 한 척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는 내전을 피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베트남 사람 9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이들을 무시하고 돌아오라고 명령했지만, 죽을게 뻔한 이 사람들을 차마 그대로 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선장은 부산항으로 이들을 데려오기로 결정합니다.

 

나에게 닥칠 불이익은 2차적인 것이고,
그들을 구조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난민을 데려왔다는 이유로 해고는 물론이고 국가기관의 조사를 받기까지 했던 그가 했던 말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인간의 목숨을 최고로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라면 디스트릭트 9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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