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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따 Jul 12. 2016

당신은 개츠비가 위대해 보이십니까?

세 번째 영화 <위대한 개츠비>

화려한 정원과 해변가가 딸린 저택,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집사, 삼시 세끼 매번 새로운 식사를 대접하는 요리사, 기분에 따라 마음껏 바꿔 탈 수 있는 자동차까지. 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삶을 산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제이 개츠비입니다. 꿈의 궁전에서 주말마다 화려한 파티를 여는 이 남자, 모든 것을 손에 넣은 그는 동화 속 왕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꾼, 개츠비

 


수수께끼로 가득한 남자 개츠비.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한 그의 스케일은 남다릅니다.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던 여자, 데이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저택을 호화롭게 꾸며, 주말마다 번쩍번쩍한 파티를 엽니다. 혹시나 그녀가 자신의 파티에 와줄까 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호화로운 개츠비 집 옆, 작은 오두막집에 사는 닉. 그는 데이지의 사촌입니다. 데이지와 개츠비가 연인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닉은 이 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합니다. 우연을 가장해 그녀 앞에 나타난 개츠비. 데이지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한 눈을 파는 남편 톰 뷰케넌과의 결혼 생활에 지친 그녀는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개츠비에게 마음이 쏠립니다.


 

우리 둘이 도망 갔으면 좋겠어

 

두 사람에게는 로맨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위험한 줄타기와 같았습니다. 점점 더 깊어지는 사랑에 데이지는 도망가자고 했지만, 개츠비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 많은 것을 두고 떠나자는 데이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따로 있었습니다. 개츠비는 탐에게 가서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한 후, 데이지의 부모가 있는 루이빌에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합니다. 개츠비의 완벽한 계획에 닉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를 반복하지 말아요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해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려 놓은 후, 동화 속 사랑을 구현하고 싶었던 개츠비는 결국 탐을 찾아갑니다. 그는 데이지에게 탐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건네라고 강요 하지만, 극도로 불안해진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고 맙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바래. 난 저 사람을 사랑했어. 당신도 사랑했고

 

개츠비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개츠비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 때 탐은 개츠비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진짜 정체를 폭로하며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약국에서 밀주를 팔고, 채권 사기로 돈을 버는 사기꾼, 비싼 차와 옷, 파티는 모두 개츠비의 부패와 낮은 신분을 가리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힙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 상황, 차를 타고 급히 돌아오는 길에 흥분한 데이지는 그만 탐의 내연녀를 치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데이지는 탐에게 용서를 구하고, 탐은 그녀의 허물을 감싸기로 하며 타운을 떠나기로 합니다. 한편 내연녀의 남편은 개츠비가 자신의 아내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개츠비에게 총구를 겨눕니다. 위대한 개츠비, 하지만 그의 끝은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개츠비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건 무엇일까?

 

나의 삶은 저 빛처럼 돼야 해. 끝없이 올라가야 하지

 

사실 개츠비의 부모는 지독히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츠비에게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있었습니다. 바로 위로 올라가려는 열망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개츠비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낡은 오두막 집을 떠납니다. 그는 군복으로 자신의 초라한 신분을 감춰, 데이지의 마음을 차지하고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오랜 전쟁으로 데이지는 결국 탐과 결혼합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은 빛, 다른 세상에 속한 데이지는 그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빛을 가져야만 자신의 삶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개츠비는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부와 명예를 손에 쥐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개츠비의 그 많은 돈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모두 밀주를 만들어 판 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개츠비는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야만 했던 걸까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었던 1920년대 미국의 상황을 들여다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함께 전례 없던 물질적 풍요를 누렸으며, 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주가는 끝없이 치솟았고, 사람들은 화려한 삶을 즐겼습니다. 미국 사회학자 베블런이 말한 ‘과시적 소비’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하지만 경제발전으로 모두가 잘 살게 됐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 불평등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피게티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에 따르면 1920년대에 급증하기 시작한 소득 불평등은 대공황 직후 절정에 달했는데, 당시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소득 불평등 상황을 설명한 앤서니 앳킨슨의 도서 <불평등을 넘어>를 보면, 상위 1%의 유산이 전체 부의 1/3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하니, 경제적 불평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있었던 겁니다.   

 

우린 다르게 태어났어. 핏줄부터가 다르지
당신이 뭘 꿈꾸든 절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

 

톰의 말처럼 경제적 불평등은 태생부터 다른 계급을 만들어냈습니다. 빈곤층인 개츠비가 상류층으로 가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그는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밀주를 만들어 팔아 돈을 벌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츠비가 그렇게나 바꾸고 싶다던 과거는 데이지와의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꿈 한 번 꿔보지 못했던 자신의 처지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개츠비의 꿈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되돌리고 싶었던 그의 욕망은, 쓰디쓴  현실의 벽을 깨지는 못했습니다.



개츠비 이후 90년,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2012년, 버락 오바마의 경제 자문위원인 앨런 크루거 교수는 경제 이론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할수록 계층이동이 어렵다’는 이 이론의 이름은 바로 ‘위대한 개츠비 곡선’입니다. 그 전까지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던 앨런 교수는 최근 30년간 미국의 상황을 되돌아보며 이제는 이 단어를 써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21세기 자본론을 집필한 토마스 피게티 역시 2000-2010년 미국의 소득불평등 수준이 1910-1920년에 버금갈 기록적인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며 불평등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상황은 어떨까요? 얼마 전 ‘수저계급론’이라는 신조어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부모가 가진 부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부모 덕에 편히 살 수 있는 사람은 금수저, 돈도 빽도 없어 기댈 대 없는 사람은 흙수저로 분류합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20대의 88%, 30대의 83%는 수저계급론에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면 단지 웃자고 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위대한 개츠비 곡선의 두 방향 중 어디로 향해 있을까요?


지난 5월, 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공부의 배신>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가혹한 현실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목숨 걸고 공부하는 10대와 20대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중 3부에 소개된 한 설문조사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1,000명의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 중 강남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꿈이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서 검사, 의사 등 전문직이라고 대답한 반면, 강북 지역의 아이들은 기술직을 말하는 경향이 높았습니다. 게다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했습니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아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현실이 아이들의 꿈에도 영향을 줬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사는 두 명의 20대 청년들의 이야기도 소개 됐습니다.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는 여학생은 방세와 생활비를 벌며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 학생은 하루 생활비 1만원을 넘지 않기 위해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합니다. 서강대를 졸업한 또 다른 남학생은 취업 준비에만 몰두하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말합니다. 방송 PD가 되는 것이 꿈인데, 정작 취업 준비보다는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이 많아서 불안과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토익 시험을 볼 때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그는 교환 학생 경험 한 줄이 없다는 사실에 또 한숨을 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죽도록 노력하면, 원하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곳일까요? 우리가 원하는 ‘꿈’에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두렵기만 합니다. 



개츠비는 정말 위대한가?


닉은 영화 마지막에 개츠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자신이 쓴 소설을 마무리 짓습니다. 계급의 한계를 뛰어 넘은 개츠비는 서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죽기 전 단 한 번 이라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개츠비가 위대한 세상, 어떤지 씁쓸하게만 느껴지지 않나요?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이야기는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개츠비는 위대한 인물이 아닌 그저 범죄자일 뿐입니다. 결국, 개츠비가 위대한지 아닌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빗대어 평가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개츠비가 위대해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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