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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Jan 07. 2023

30살이 되었는데 곧 29살이 돼요

캐나다에서의 100일을 맞이하며 


2023년 6월부터 한국은 '세는 나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내 친구들은 신년을 맞이하며 '계란 한 판 케이크'로 서른 살 파티를 여는 모습을 기념하고 있는데 6개월 뒤면 다시 29살로 불리게 된다니 아리송하기만 하다. 


작년 9월, 나는 한국에서 29살로 살다가 캐나다로 넘어오며 28살로 여겨졌다. 30살이라는 나이가 가까워진다는 것은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슬그머니 신경 쓰이고 거슬렸다. 왠지 인생의 준비를 착착 해내야 하는 시기인 것 같고, 이제 결혼을 얘기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왔을 때 '저는 28살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내심 즐겼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걱정하던 30살에서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 나이도 별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29살로 살다가 28살이 되어버리고, 28살의 시야로 29살이라는 나이를 다시 바라보니 그래도 한 번 와봤던 길이라 그런지 이전처럼 높은 장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30살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캐나다에 와서 마음씨 좋은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만나 패들보딩을 배우고 주말마다 근처 강으로 나갔다. 내 키만한 길이의 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앉아서 노를 저으며 바람도 쐬고 단풍 구경도 했다. 패들보딩은 처음이었지만, 찰랑거리는 물살에 보드를 내어주고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까무룩 잠이라도 들 것 같은 평안한 느낌이 들었다. 



호스트인 앤 아줌마는, 저 멀리 한국에서 혼자 날아와선 자신의 제안에 따라 패들보딩을 가겠다고 주말마다 홀랑홀랑 따라나서는 내가 얼마나 신기했을까. 그분은 두 번째 나들이에서 조심스럽게 내 나이를 물었다. 거의 열흘이 지나가는 시점이었다. 아직 한국식 세는 나이에 길들여져 있어 29살이라 말을 했다가 28살이 맞다며 정정했다.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이 나이를 얘기할 때 헷갈리는 경우는 많지만, 보통은 지난 나이를 말하지 늘려 말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래서 나이를 올려쳐 말한 것이 된 나는 항상 상대의 의아한 표정에 민망한 변명을 얹어야 했다. 29살과 28살을 오가다 보니 그 두 나이를 받아들이는 느낌의 차이가 더욱 희미해졌다. 


"한국에서는 29살이 되고 나서 30살이 되기 전의 압박감을 은근히 느꼈어요. 그런데 이곳에 오면서 국제 기준 나이로 28살이라고 말하게 되었고, 다시 30살이라는 나이를 바라보니까 솔직히 별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물론이지. 그냥 시간이 흐르는 과정일 뿐이야. 달라지는 건 없어. 오늘은 날씨가 좋고 바람도 좋아서 우리가 이렇게 패들 보딩을 하러 나올 수 있었잖니. 그게 중요해."


각자의 보드에서 노를 젓고 있었으니 우리의 거리는 양팔을 뻗은 거리 그 이상으로 멀었다. 호스트 아줌마는 "Nothing is different!(아무것도 다를 게 없어!)"라고 말하다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강조하고 웃었다. 나는 보드에서 일어난 채로 노를 젓는 자세는 불편해서 앉은 채로 노를 젓고 있었다. 대신 그 덕분에 물너울이 더 잘 보였다. 


보드가 물살을 가르면 노를 이용해 밀려난 물살을 뒤편으로 넘겼다. 흐르는 물살 위에 올라탄 보드는 가볍기만 하다. 노를 한 두 번만 저어도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간혹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올 때는 물살에 보드가 부딪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데, 물살에 이기려 들면 보드가 유독 무거워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 그럴 때는 물살과 바로 부딪히지 않고 물살이 보드 밑에 들어와 살짝 들어줄 때 노를 저어야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박자를 타고 노를 젓다가 엇박자가 나면 보드의 머리가 점점 다른 쪽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아무리 힘을 줘서 정방향으로 노를 저어도 힘만 들지 보드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오히려 보드를 미는 물살 쪽에 노를 두고 팔 전체의 힘으로 단단히 지지한 채, 거꾸로 밀어주면 보드가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지금은 노를 저어줄 때인가, 아니면 노를 반대로 밀어줘야 할 때인가, 자연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얘기가 이 뜻인가 보다. 물살을 거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은 순간이지만, 거꾸로 노를 저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나의 1년 휴식기를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얼마를 벌겠다’ 아니면 ‘얼마를 모으겠다’라고 하는, 쓰거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뚜렷한 목적 없이 이곳에 온 지 100일이 지났다. 그러면서 2023년이 되었다. 100일의 시간이 준 선물인지, 나는 이제 캐나다에서 이루고 싶은 목적을 말할 수 있다. 마침 한국에서 ‘세는 나이’를 공식 문서에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한국에 돌아가도 한국을 떠나왔던 작년의 나이로 불리게 될 것이다. 1년을 떠났다가 돌아가도 같은 나이가 종이에 찍힐 거라니 미묘한 기분이다. 



나의 새로운 올해 목표로는 인생 공부이자 딴짓 공부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국 시각은 이곳과 14시간 차이가 난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카톡은 한국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먼저 울리기 시작했고, 나의 크리스마스는 그보다 14시간 이후였다. 활동 시간이 달라지며 내가 잠에서 깨면 가족과 친구들은 잔다며 인사했다. 한 박자씩 늦으니 약간 거리감을 둘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심적 안정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태원의 그날만큼에는 나 또한 한국에 있는 듯 한국의 시간을 살았지만, 그날이 그럴 수밖에 없는 날이었을 뿐, 대게는 인스타그램도 잘 들어가지 않고 소식에 무뎌졌다. 


여태껏 한국에만 살아왔으니 그동안 구축해왔던 나의 세계와 정 반대 지구에 산다는 것은 일종의 단절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한 상실감을 인터넷 게시판에 토로하는데, 방법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절이 아니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며 모두가 하나의 시간대를 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오히려 심리적인 평안을 느꼈다. 친구인 듯 타인인 듯, 여러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나'라는 기둥이 단단하게 세워진다. 


작년의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상태였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물음조차 들지 않는 번아웃에 빠져 있었는데 워낙 취미도 많고 활동적인 편이라 남도, 나 자신도 내면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일을 하면 돈이야 벌겠지, 사람들 만나다 보면 연애도 하고 언젠가 결혼도 하겠지, 하지만 모든 게 두루뭉술했다. 


이렇게 내가 어디를 딛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10년, 20년, 30년을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을 잠시 멈춰야겠다며 떠나온 곳이 이곳, 캐나다이다. 


미국을 그러데이션의 나라라고 한다면, 캐나다는 모자이크의 나라라고 한다. 개인 각자의 퍼즐을 모아 또 다른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나라이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고 나의 작은 세계가 그들을 보며 넓어진다. 


물론 좋은 의미로만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이곳 도심지에서는 길을 걷다가 약에 취한 사람을 만나기가 매우 쉽다. 사람들이 약을 하고 주사 바늘을 마구 버릴까 봐 화장실에는 바늘을 버리는 박스가 따로 있을 정도로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 토론토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며 한 달에 두어 차례 경고 문자가 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해가 진 후로는 중심가를 다니지 않는다. 캐나다가 미국보단 덜하다고 하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다 보니 인종 차별 문제도 맞닥뜨린다. 우버를 탔을 때 나와 친구가 한국인과 중국인이란 것을 알고 나서 굳이 스몰토크를 위해 아시안 역사 얘기를 꺼내 들며 “한국은 작고 약한 나라다”라 하고, “아시안들은 작은 눈이 특징인데,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눈이 작다”라고 수다를 떨던 나이 많은 운전기사도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런 사람들을 볼수록 나의 작은 세계가 넓어진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 드립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이 예상보다 일찍 와서 들떠있던 며칠이었어요. 합격 메일을 몇 차례 꺼내 봤는지... 그동안 모아 온 아이디어와 짧게 써뒀던 글을 재정리하며 두통약을 먹었지만요. 역시 첫 글을 보인다는 건 설레고 긴장되고 그러네요. 첫 글에 깔끔히 소개하려고 했던 '인생 공부 & 딴짓 공부', 저의 올해 목표는 다음 글의 적절한 부분에서 꺼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새해부터 좋은 도전을 하게 되어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 늦은 사춘기를 맞이하여 인생의 일시 정지를 누르고 있는 제 이야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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