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Safe), 1995>
<세이프 (Safe), 1995>
IMDb rating: 7.1/10
감독: Todd Haynes
출연: Julianne Moore, Xander Berkeley, Dean Norris
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평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고,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며 그 이름을 알렸습니다.
장르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관람 내내 호러 영화에 가까운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에는 유령도, 흡혈귀도, 연쇄 살인마도 없습니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자극적인 연출도 전혀 없지요. 대신, 익숙하고 평온해 보이던 일상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어긋남이 감지될 때 스며드는 낯섦과 불안 — 그 막연한 공포를 영화는 아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이 정서적 긴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는 주인공을 연기한 '줄리언 무어'의 공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절제된 표현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그녀의 연기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메디컬 드라마가 아닙니다. 주류 의학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은 더더욱 아니지요. 감독 '토드 헤인즈'의 진짜 의도를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는 현대 사회 속 개인의 정체성 붕괴와 통제할 수 없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캐럴은 집에서 요양센터로, 그리고 결국 독소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요양센터 내의 밀폐된 방으로 — 점점 더 '안전한 (safe)' 공간을 향해 이동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을 추구할수록 그녀는 더 불안해지고, 더 깊이 고립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인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는 소외와 불안의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안전을 추구할수록 더 불안해지는 역설. 영화는 그 역설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응시합니다.
이처럼 이 영화의 주제는 우리가 함께 걸어가려는 조화로운 생활습관의 여정과는 얼핏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프롤로그로 선택한 것은, 극단적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마주치는 사례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약 20편의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를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이 연재의 주제와 정확히 결을 같이하는 작품도 있을 것이고, 이 영화처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싶은 작품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영화 전체의 주제나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특정 장면이나 캐릭터의 한 단면만을 끌어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또한 이번 장처럼 중간중간 '쉬어가는 코너'로, 각 장에서 인용한 영화에 대한 짧은 글을 곁들일 예정입니다. 전문 평론가가 아닌 제가 감히 영화평을 쓴다기보다는 — 영화 속 사소한 디테일 하나에서 촉발된 개인적인 소회를 느슨하게 풀어놓는 에세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제목도 '영화평'이 아닌 "영화에 대한 단상" 입니다.
자, 이제 예고편이 끝나고 곧 영화관 불이 꺼집니다. 휴대폰은 진동으로 해 놓으시고, 즐거운 관람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