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엔 의미가 있다. 분명 있을 것이라 믿는다.
친구를 만났다. 소주를 한 병 시켰다. 반가운 마음으로 안부를 물었고 얼굴을 보며 웃었다. 흘러가는 물처럼 잔이 몇 순배 돌았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거나하게 마셨다. 그는 나름 힘들었던 과거와 가여웠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상당히 관조적인 어투로 말을 이어가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까 썩 괜찮더라 하고 말을 끝냈다. 괜찮다는 말은 좋은 쪽도 나쁜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지 않음도 나쁘지 않음도 아닌 그 중간 어디 즈음을 통틀어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수없이 많은 후회들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화도 내보고 끙끙 앓기도 했지만 상처가 아문 자리에 자연스럽게 굳은살이 생기 듯 새 하루를 살아낼 정신을 차렸다. 오기였을지라도 괜찮았다. 왜냐면 주어진 하루를 지켜낼 삶의 이유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에. 지금도 이 부분은 변함이 없다. 술잔을 들었다.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괜찮아.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결국 내가 듣고 싶던 소리였다.
집으로 걸어오던 길. ‘돌아보다.’라는 짧은 단어가 던진 파장이 꽤나 묵직하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삶을 직시하고 싶은 용기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함께 빚어내는 힘이 아닐까. 과거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지금을 오롯이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일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기꺼이 감내하는 시간을 거치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든다. 그 다음 스스로 정한 기준으로 인생의 어느 순간을 스스럼없이 돌아볼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구나. 성장이란 이런 경험을 말하는 것이겠다. 술에 취한 늦은 밤, 펜을 들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지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잊지 않도록 노트에 적어 두었다.
모든 순간엔 의미가 있다. 분명 있을 것이라 믿는다. 스쳐간 모든 일들이 얽히고설켜 언젠가 ‘아, 그랬구나.’하며 돌이켜 볼 수밖에 없는 그 한 번의 찬란한 행위를 위해 오늘을 즐겁게 버텨야 하는 건 아닐는지. 괜히 이런저런 고민들을 아주 찬찬히 돌아보게 되는 일요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