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삶 주위에 있음은 진실로 축복이다
고향집에 다녀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문 너머로 스치는 풍경을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높고 낮은 언덕들, 그 너머 논과 밭, 나무 한 그루, 꽃 하나, 시골 버스 정류장, 바로 옆의 가로등과 신호등, 터미널 앞 식당 간판들이 찬찬히 흘러 지나갔다. 가깝고도 먼 추억들처럼 눈앞을 채웠다. 한데, 모든 것이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오래 전 그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심할 정도였다. 눈으로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참 오랜만이다. 너흰 언제나 그대로구나. 그동안 오고 가며 수 백 번 우리는 서로를 보고 반가워하고, 또 멀어져 가는 모습을 아련하게 보아왔겠지. 진심으로 고맙다. 지금 여기, 이렇게 그대로 있어줘서. 가만 보니 그때와 지금, 변한 건 나뿐인가 보구나.
마침 손에 들려 있던 책, 곽재구 작가의 <길 귀신의 노래> 한 페이지를 펼쳤다. '몇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삶 주위에 있음은 진실로 축복이다. 문득 그것들을 삶의 길 위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현실이 펼친 난감하고 고통스런 시간들의 그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붉게 노을 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서로 너무 변한 게 없다고 마냥 투덜대고 깔깔거리며 웃던 녀석들.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을 감고 생각했다. 가족, 친구, 동료, 선배, 후배, 지인들의 행복한 얼굴들과 함께 스르륵 잠이 들었다. 꿈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슬쩍 눈을 뜨니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마음이 참 따뜻했다. 모두 한결같이 나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지금 모습 그대로 누군가의 곁에 굳건하게 존재했으면 좋겠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이 현실의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시간 그물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희망을 현실로. 결국은 나부터 잘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