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재구성한 것입니다.
요즘 들어 예민함을 재료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한 번 작업에 들어가면, 자신을 혼자만의 방에 가두고
며칠 밤이 가고 며칠 낮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른 채 그 안에 머물러 작곡을 한다고 했다.
그는 작업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곡을 통해 자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감정에 휩싸였고, 그런 감정들은 밀물처럼 한꺼번에 그를 압도했다.
빠져드는 것만큼 멈추는 것도 두려웠다.
그는 말했다.
"영원히, 영원히 바닥이 없는 곳으로 계속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음은 계속 떠올랐다고 했다.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는 그 음을 그저 붙잡는 느낌에 가까웠다.
"끊어지지 않게 계속 그 실을 따라 주워 담아야 하는 느낌이에요.
가느다란 그 실을 한번 놓치면, 다시는 그런 빛깔의 실은 찾을 수 없어요."
그러나 한번 음이 찾아오면, 감각이 반전된다.
위로, 위로...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온몸을 전율하게 했다.
영원히 떨어질 것만 같은 그 자리에, 영원히 떠오를 듯한 희열이 피어올랐다.
그 빛깔의 실을 손에 쥐는 순간의 그 짜릿함은, 그 추락을 견딘 사람만이 아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밥상 한 번 차려 먹는 것도, 누군가를 마주치는 것도 기피한 채 그는 자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잠드는 것마저도 미뤘다.
한바탕 그 영감들을 주워 담아 옮겨놓고 나면, 그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며칠을 거의 잠으로만 보냈고, 그 잠은 쉼이라기보다 꺼짐에 가까웠다.
그것을 반복하며 그는 생기를 잃어갔다.
그는 이 고통을 말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를 붙잡고, 단 한 번이라도 이해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감각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걸.
그래서 그는 아무에게도 차마 닿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들어낸 음악 안에 홀로 머물러 있었다.
그 안에서 그는 외롭고 또 외로웠다.
그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잠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술뿐이었다.
비단 그만이 그랬던 건 아니다. 예민함을 새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감각에서 잠시 숨을 고를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스위치는 이미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술로, 약으로, 관계로 — 그렇게라도 잠시 꺼져 있을 시간을 번다.
나는 그것이 단지 도피나 나약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부서지지 않기 위해 붙잡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만나 본 중에 가장 섬세하고, 가장 오묘한 빛깔의 사람이었다.
그의 세계에 어떠한 방식으로 발을 들일 수 있을지 조차 몰랐다.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이 사람이 내 앞에 앉기까지 얼마나 큰 결심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설득이 필요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무거운 책임감이 그 앞에 나를 붙잡았다.
지금 여기서 그의 손을 놓치면, 다시는 그를 찾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안의 파도는 이미 너무 거셌다. 내가 작은 물결 하나라도 더 얹는다면
그는 더 산산이 부서져갈 것이다.
아픔을 꺼내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상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져보았지만,
그에게 할 그 어떤 마땅한 기술도 접근도 거의 없었다.
상담을 배울 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는 이 두 가지만 물으면 안다고
밥은 잘 먹나요? 잠은 잘 자나요?
이것이라면 일단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밥을 먹는 것을 가르쳤다.
꼬박꼬박 잠을 잘 수 있도록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했다.
그 외에는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을 따라갔다.
그는 상처 입고 구조된 영양처럼 아주 많이 지쳐서, 한동안은 그저 먹었고, 때가 되면 자리에 누웠다.
안쓰러운 그의 눈을 조용히 맞추었다.
그로부터 얼마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조금 상기되고 조금 들뜬 공기를 품고 상담실에 들어왔다.
".... 돌아왔어요. 어제 다시 곡이 써지기 시작했어요.
사라지지 않았나 봐요, 멀리 풀려나갔다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는 한참 그 실을 함께 들여다봤다.
그것은... 실이 아니었다.
요요였다.
어릴 때 나의 아버지는 요요에 달린 실 끄트머리를 동그랗게 묶어 나의 손가락에 감아주면서 말씀하셨다.
"제일 중요한 건 먼저 손가락에 잘 매는 거야. 그래야 멀리 갔다 돌아오거든."
밖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의 손에 매여 있었다.
어디선가 찾아올까 두려워했던 그 영감은 — 처음부터 그의 영혼이 닿을 수 있는 반경 안에 있었다.
그가 그것을 알게 된 이상, 그는 더 멀리, 더 찬란한 빛깔의 실을 던져볼 수 있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