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닿지 못한 곳에서 언어는 빛이 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는 갓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말수가 적은 청년이었다.
서울로 홀로 상경해 마주한 세상이 몹시 낯선 듯했다.
무엇이 좋고 싫은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의 세계는 숲처럼 고요했고, 그 안에는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들이 살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혼란스러웠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무언가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깨우고 싶고, 물어보고 싶고, 손을 내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나의 불안이 만들어낸 조급함이라는 걸 곧 알아차렸다.
나는 재촉하려는 마음을 멈추고, 그의 시간 안에 함께 있기로 했다.
그날 그는 말이 없었다.
처음엔 그도, 나도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방 안에는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나 역시 마음 한켠이 흔들렸다.‘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공기가 서늘해졌다. 창 안으로 오후의 느린 햇살이 조용히 들어와 우리 사이에 머물렀다.
침묵으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즈음 상담실 안을 채운 분위기는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우리를 깨닫게 했다.
그의 침묵은 도망이 아니라, 존재의 형태였고 나의 기다림은 무력함이 아니라,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세션은 끝났다.
그날 우리는 50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는 법을 느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누군가를 돕는 실험을 했다.
그 후로 그는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단어를 신중히 골랐고, 한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아주아주 오래 생각했다.
그 신중함은 단순한 머뭇거림이라기보다는 자기 안의 감정을 가장 정확한 말로 담으려는 진심이었다.
그의 언어가 조심스러웠던 만큼, 그 진심은 투명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그는 영상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빛과 움직임으로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마 그는 언어가 닿지 못하는 감정의 결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그의 신중함과 나의 기다림은 같은 결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둘 다, 내가 전하는 것이 손상되지 않고, 말로 의도가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배웠고, 나는 기다림 속에서 서로의 결에 맞닿는 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언어를 찾아갔다.
말이 닿지 못한 곳에서 언어는 빛이 된다.
그의 표현이,
그리고 그를 기다리던 나의 침묵이
모두 빛의 다른 형태였다는 것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