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져 왔던 것들에 대하여
수업에 가기 전, 거울 앞에 서서 레오타드를 입고 타이즈를 올리고 워머를 하나씩 끼워 넣는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났다.
결국 이걸 입고 있네, 싶어서.
사십이 넘어 발레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웃음 뒤로, 아주 오래된 기억이 따라 올라왔다.
어릴 때 나는 발레를 하고 싶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막연히 발레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꽤 멋졌다.
엄마를 졸라 발레 학원 앞까지 갔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섰다. 지하라서 공기가 나쁘다고 했다. 학원 문 앞에 서 있던 그 장면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치어리더나 무용단 같은 사람들을 보면 나는 늘 그 장면에 눈이 갔다. 음악에 맞춰 정확하게 움직이는 몸, 그리고 무엇보다 그 표정. 즐거워 보였고, 신나 보였고, 자기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몰입이 블랙홀처럼 주변을 빨아들이면서 공기를 바꿔버리는 것. 나는 그게 좋았다.
음악을 틀어놓고, 과일바구니에 깔려있던 황금색 보자기를 들고, 케이크 상자에서 뜯어낸 끈을 리듬체조 선수처럼 휘두르면서 텔레비전에 나오던 무대들을 따라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보여줄 사람도 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무대 위에 있었다.
초등학교 무용 시간에도 그랬다. 다른 아이들이 동요에 맞춰 움직일 때, 나는 그 밋밋하고 영혼 없는 춤을 출 수가 없었다. 캡 모자를 뒤집어쓰고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틀었다. 그 무용 시험에. 이야기가 한동안 전교에 소문이 자자했다.
중학교 때 한 명씩 창작 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들 안무를 짜고 연습해왔겠지만, 나는 그냥 나갔다. 평소처럼 음악에 몸을 맡기면 됐다.
춤을 추던 중간이었다. 갑자기 반 아이들 전체가 동시에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끝나고 물어봤더니 친구가 말했다.
"너 아까 돌면서 싹 웃었을 때 너무나 화사해 보였어 “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표정은 아니었다.
그게 블랙홀이었다. 내 몰입이 주변의 공기를 바꿔버린 순간.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다.
계속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한예종 연영과에 가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누가 쟤를 저렇게 키웠냐고 부모님이 싸우셨고, 사네 마네 소리가 오갔다. 아버지는 끊으셨던 담배를 다시 태우시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접었다.
20대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댄스 동아리를 기웃거리거나 학원에 등록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더 절박한 건 따로 있었다.
원하던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못했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 그 위기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춤은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대신 책상 앞에 앉았다.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논문을 읽고, 모니터 앞에서 논문을 썼다. 그 와중에 아이 둘이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논문을 쓰다가 아이를 안고, 아이를 재우다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등을 펼 시간조차 나에겐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몸이 달라져 있었다. 어깨는 앞으로 말렸고, 목은 짧아졌다. 거울 속 나는 단단한 등껍질을 얹은 거북이처럼 보였다.
그 몸 어디에도 춤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버텼다. 논문을 쓰고, 아이를 키우고, 자격증을 따고, 학위를 받았다.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교수가 됐다.
임용 후 몇 년쯤 지났을 때였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릴 때 이야기가 나왔다.
"네가 이렇게 매일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질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나서지 말라고 말리지 말걸. 미안하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갑작스러운 사과가 머쓱하기도 했고, 뭘, 그런 걸 사과해,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오래 머리에서 울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생각이 이어졌다.
엄마가 막았던 건 발레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것, 눈에 띄는 방식으로 사는 것, 무대에 오르는 것. 그 모든 것들이 포함돼 있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친한 친구가 없어도 전학 간 학교에서 반장 선거에 나가고, 그대로 뽑히기도 하는... 앞에 나서는 게 설레고 자연스러웠던 사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습관처럼 한 꺼풀의 커튼 뒤에 세우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솔직한 나대로 행동하는 것을 스스로 자제하면서.
그래서 더 묘했다.
막았던 것과,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느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냥 커튼 뒤에 있었던 것뿐이었다.
막힌 게 아니라, 미뤄져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거울 앞에 서 있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늦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오랫동안 커튼 뒤에 서있던 나를 다시 온전히 나로 나서게 하는 것.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이상하게 늦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삶은 결국, 그 사람이 가진 본연의 방향성대로 흘러가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억지로 밀어붙이기보다 흘러가게 두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방향으로,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쪽으로.
돌고 돌아 결국 돌아오는 길이라면,
굳이 거슬러 가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