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시간들. 존재의 무게
이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재구성한 것입니다.
꿈속에서 나는 사람들이 모여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직 시작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무대는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를 오가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자리였다.
나는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누군가를 돕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안에 있었다. 공연을 보려는 듯 자리를 살피고 있을 때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냐고. 나는 잠시 멈췄다가, 나도 그가 그리워서 왔다고 말했다. 더 묻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아직 시작되지 않은 공연장에 있었다. 말이 없는 상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뜬 아침,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한참을 헤아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제가 그의 기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대신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말했고, 어떤 이는 말하지 못했다. 말을 시작하다가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이미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꺼내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 일 없는 듯 말하다가 문장이 조금씩 느려지기도 했다. 말 대신 침묵이 길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긴긴밤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고,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끝내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척 했고, 어떤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의 안부를 먼저 챙겼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슬픔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가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 곁에 앉아 그들이 꺼낼 수 있는 만큼만 함께 들었다. 조금 더 말해도 된다고 묻지 않았고,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이 이어지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어도 순서를 바로잡지 않았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그대로 두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각자의 슬픔 곁에 가만히 손을 얹는 것.
어떤 이의 꿈에는 그가 나타나고, 어떤 이의 꿈에는 오지 않는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이어 붙인 잠 속에서 그를 본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아무 일 없던 날처럼 웃고 있었다고,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고.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이면 그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는 몇 번이고 되묻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밤을 넘겼다. 꿈에 그가 오지 않는 날이 길어지면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서, 혹은 놓친 것 같아서. 누군가는 자꾸만 잠을 청했고, 누군가는 억지로 감은 눈 안에 그를 불러냈다. 꿈에서 그를 보았을 때 누군가는 위로받았고, 누군가는 안도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를 기다렸다.
한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는 그의 일부를 말하지만, 나는 여러 사람들 속에 새겨진 그의 조각들을 통해 그를 하나의 사람으로 보게 된다. 본 적도 없는 그였지만, 어느 순간 그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완전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모여 조금씩 그라는 퍼즐의 조각을 채워갔고, 그렇게 모여든 기억들 속에서 그는 다정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부셨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주 많은 얼굴들을 보았다.
그가 이 모습을 생전에 알았더라면...
안타깝게도 이런 것들은 떠난 뒤에야 비로소 보인다.
한 사람의 존재란 이렇게 깊고 무거운 것이었나.
어떤 이름이 불릴 때 그 자리에 생기는 공백을, 그 무엇으로 메울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멈춰버리는 순간을 보았다. 아무 일 아닌 듯 이어가던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그대로 굳어버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은 어느 순간 일상 한가운데에서 걸려나왔다. 가볍게 주고받던 농담 사이에서, 낄낄대며 넘기던 예능 채널에서, 같이 걸었던 밤의 공기 속에서. 그때마다 숨을 고르는 데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우려 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고, 의식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계속 놓여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앉아 한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삶 어딘가에 지금 이 순간에도 새겨지고 있을까.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내가 그 무엇도 아닌 것 같은 날에도.
그가, 받았던 그 모든 사랑 속에서 오래도록 편안하길 바란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내어 잘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