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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woon Dec 29. 2021

지하철, 인생들의 모임.

수많은 인생들의 교차로

지하철은 수많은 삶의 뭉치입니다.


바닥에 널브러져 연신 신문을 자신의 옆구리로 끌어올리는 빈민의 삶부터, 근검절약의 삶으로 넘치는 재산을 마련해 둔 자산가의 삶까지.


그들은 같은 시간을, 스치는 공간에 공존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삶에 있어 가장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일지 모릅니다.


파산을 앞둔 자의 버거운 눈꺼풀과 희망찬 기대로 밤잠을 설친 자의 무거운 눈꺼풀이 동시에 내려 오르는 곳,


생명을 잉태해 누구보다 미래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임부부터, 조만간 닥쳐올 이생의 끝을 알고 살아가는 시한부의 삶이 교차하는 곳.


생선을 자신의 비린 손으로 직접 판매하는 사람부터

그 판매처를 여러 곳 소유하고 있는 물질의 권력자까지.


그들은 각자의 삶을 움켜쥔 채 지하철을 통해 서로를 스쳐갑니다.


세상은 여러 삶이 뭉친 하나의 거대한 바둑판입니다.


돌과 흑돌은 조화를 이루듯 보이지만 서로는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방법에 큰 관심을 쏟는 돌들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서로를 나쁜 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지하철은 많은 돌들이 한데 모인 바둑통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지만 동시에 판 위에 놓일 수를 생각합니다.


그런 돌들에게 잠시의 쉼을 허락하듯, 지하철은 일정구간에 진입하며 메인 등을 꺼트립니다.


지하철 내부의 등이 바깥세상의 먹구름을 연상케 합니다.


먹구름에 얼굴을 숨긴 돌들은 무관심한 척 의식했던 주위 돌들의 표정을 피해 의식 없는 표정을 짓습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짧은 불빛의 껌뻑임의 신호가 일자 돌들은  다시 세상의 표정을 짓습니다.


밝히 켜진 등 아래, 적막을 뚫는 순수한 신생아의 옹알이때 묻은 돌들 시선을 모읍니다.


삶과 세상을 모르는 순수의 웃음이 또렷해진 돌들의 눈에 들어온 뒤 만들어진 것은 빙그레 지어진 각자의 입에서 나온 감탄의 말들입니다.


수많은 사연의 삶들이지만, 예기지 않게 들은 순수의 음성을 선물로 여기듯 경계의 눈빛은 흐려집니다.


순수의 시간에 잠시 머물던 돌들은 다음 정차역에 대한 안내방송을 신호로, 다시 세상에 지지 않으려 자신의 짐을 힘껏 움켜쥡니다.


자신들이 서야 할 인생의 줄을 만나기 위해 빠르게 내릴 준비를 하며 앞사람 뒤에 무신경한 듯 줄을 섭니다.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빠르게 걸어 나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빈 공간에 각자의 무게를 단 다른 인생들이 발을 들입니다.


닫힌 문의 지하철은 다시금 속도를 내며 다음 현실을 향해 달립니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누군가는 삶이 버거운 듯 하나의 숨을 겨우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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