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론

by Edward Alistair Langford

당신은 아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찍을 사람이 없다. 어차피 바뀌는 것도 없다. 정치에 관심 없다. 혹은 가장 세련된 버전으로, 나는 이 구조 자체를 거부한다.


이 말들이 틀렸다고 단정하기 전에, 먼저 그 안에 있는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 정치는 실제로 실망스럽다. 후보들은 종종 선택지가 아니라 차악의 목록처럼 느껴진다. 거대 양당이 번갈아 집권해도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이 현실을 외면하면서 투표를 도덕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공허하다.


그러나 그 냉소가 정확히 어디까지 정당한지를 물어야 한다.


투표를 권리로만 이해하면 기권은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선택으로 정당화된다. 권리는 포기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시리즈에서 반복해서 말해온 공화주의적 시민 개념은 다른 전제 위에 서 있다. 공화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공화국의 시민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설계의 감시자이자 개입자다. 권리와 의무는 분리되지 않는다. 자유론에서 말한 비지배 구조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제도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의 지속적 참여가 있어야만 그 구조가 작동한다. 책임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시민이 정치적 책임을 포기하는 순간 공화국은 설계자를 잃고 소비자만 남는다.


이 맥락에서 투표는 단순한 권리 행사가 아니다. 공화주의적 의미에서 투표는 시민이 정치 질서에 개입하는 최소한의 절차적 행위다. 최소한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투표가 시민적 참여의 전부라는 것이 아니다. 투표는 시작이고, 그것조차 하지 않는 것은 그 최소한의 문턱도 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여기서 핵심 논점이 나온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이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를 두고, 발언의 자격이나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맞지 않다. 발언의 자격은 투표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용의 옳고 그름도 마찬가지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의 비판이 사실에 기반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행동과 발언의 정합성이다.


정치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적 행위도 하지 않은 것은 발언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다. 이것은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거 결과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에게 더 무거운 도덕적 근거가 있다.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결과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스스로 그 결과에 일정한 귀책을 알고 있다는 인식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포기했다면,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불만은 절반은 자기 자신을 향해야 한다.


"찍을 사람이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기권 표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기권 표는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이면서 동시에 절차에 참여한다는 행위다. 이 선택은 "구조 자체를 거부한다"라는 원칙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최소한의 절차적 책임을 이행하는 방식이다. 투표장에 가서 기권 표를 던지는 것과, 집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투표조차 하지 않은 채로) 사이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공화주의적으로는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제도 안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고, 후자는 제도 바깥에서 결과를 소비하는 것이다.


포퓰리즘론에서 말한 것을 여기서 다시 불러와야 한다. 포퓰리즘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제도를 우회하거나 파괴하면서 정치에 개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냉소적 기권도 방향은 다르지만 같은 구조를 갖는다.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도적 참여를 거부하고 제도 바깥에서 결과를 비판한다. 포퓰리스트가 제도를 파괴하면서 개입하려 한다면, 냉소적 기권자는 제도를 무시하면서 비판하려 한다. 둘 다 제도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적 시민상과 거리가 있다.


물론 이 논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투표 참여를 시민적 의무로 강조하는 것이 자칫 현재의 제도와 선거 구조를 비판 없이 정당화하는 논리로 전용될 수 있다. 제도가 심각하게 불공정하거나 선택지 자체가 구조적으로 왜곡되어 있을 때, 참여 거부가 정당한 저항의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반론은 이론적으로 유효하다. 이것을 무시하면 투표 강조가 현상 유지의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러나 한국의 현재 맥락에서 이 반론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투표할 때 기권 표를 던질 수 있고, 다양한 정당이 참여하며, 선거 관리가 이루어지는 구조에서 "제도 자체를 거부한다"라는 원칙적 불참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바꾸는지는 불분명하다. 원칙적 불참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발언의 도덕적 근거만 약화한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편의다.


투표는 정치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투표는 공화국이 시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적 개입 수단이다. 그 수단을 쓰지 않는 것이 때로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과에 대한 일정한 귀책을 동반한다는 것. 그리고 그 귀책을 인식하지 않은 채 결과를 비판하는 것은 행동과 발언의 정합성 측면에서 자신을 약화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화국의 시민은 권리만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 권리가 작동하는 구조를 유지할 의무를 함께 진다. 투표는 그 의무의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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