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토론 공간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반복된다. 누군가 근거도 불분명한 주장을 꺼내놓고, 반박이 들어오면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라고 한 발 빼고, 그래도 비판이 이어지면 "표현의 자유 아니야?"로 마무리한다. 비판을 차단하는 삼단 면죄부다. 이 패턴이 단순히 개인의 습관이 아니라 우리 사회 일부에서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라면,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최근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온라인 논쟁 하나가 이 패턴을 정확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은 "국제법상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확신 어조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국제법상 독도의 귀속은 어느 쪽으로도 최종 확정된 바 없고, 한국은 실효 지배 중이며,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해석 논쟁에 기댄 것이지 명확한 국제법적 판결에 근거한 게 아니다. "리앙쿠르 암초"라는 중립 명칭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는데, 중립 명칭의 존재는 분쟁 당사자가 둘이라는 뜻이지 일본 영유권의 증거가 아니다. 논리적으로 무관한 카드다.
반박이 들어오자, 그는 즉각 후퇴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야", "표현의 자유 아니야?"라고. 처음엔 사실 주장("국제법상 일본 땅")으로 시작해 놓고, 반박이 오자 그것을 가치판단("내 생각")으로 격하시켜 버린 것이다. 이건 논증이 아니라 논증 포기 절차다. 그리고 그 포기의 언어로 "표현의 자유"를 쓴다.
여기서 핵심 문제가 드러난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 권력이 개인의 말을 검열하거나 처벌하지 말라는 요구다. 밀(J.S. Mill)이 『자유론』에서 전개한 논리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사상의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지, 틀린 말을 해도 비판받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라는 게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비판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밀의 논리 안에서는 틀린 주장에 대한 반박과 비판이야말로 사상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증거다. 비판을 막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건, 그 개념의 본래 취지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자유 무제한 론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가 있다. "자유에 제한이 있으면 그건 자유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언뜻 논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 안에서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타인의 자유와 충돌한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연 상태에서 만인이 제한 없는 자유를 행사하면 결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사회계약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자유의 일부를 양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자유 무제한론자가 사회 안에 살면서 제한 없는 자유를 요구한다는 건, 계약의 혜택은 누리면서 계약의 의무는 거부하겠다는 뜻이 된다. 이건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자기 모순적 남용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인식이 우리 사회 일부에서 계속 반복될까. 몇 가지 구조적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맥락 없이 소비된다. 헌법적 개념으로서의 표현의 자유는 국가 대 개인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원리인데, 이게 일상 언어로 흘러 들어오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면 안 된다"라는 식으로 오독된다. 개념이 희석되면 권리가 남용된다.
둘째. 책임 없는 주장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낮다. 잘못된 정보를 확신 어조로 유통해도 별다른 대가가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굳이 근거를 갖추려 하지 않는다. 반박이 들어오면 "개인 의견"으로 후퇴하면 그만이니까. 이 구조가 지적 게으름을 구조적으로 허용한다.
셋째. 우리 사회의 공론장이 논증보다 포지션 싸움에 익숙하다. 어떤 근거로 주장하느냐보다 어느 편에 서느냐가 중요한 환경에서, 주장의 논리적 정합성은 부차적인 게 된다. 틀린 주장도 "내 편"의 것이면 방어하고, 맞는 주장도 "저쪽"의 것이면 공격한다. 그러면 결국 누가 논리적으로 옳은지보다 누가 비판을 더 잘 차단하느냐가 토론의 승부를 가른다.
표현의 자유는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이지, 말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자유가 아니다. 사실과 다른 주장을 유통했을 때, 그 주장에 대한 비판과 교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증거다. 뚫린 입으로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착각과 비판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오해는 결국 공론장을 지적 황무지로 만드는 두 기둥이다. 그리고 그 황무지에서 가장 손해 보는 건, 실제로 논리와 근거를 갖추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