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 개념은 실존하는가

by Edward Alistair Langford

북한을 주적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빨갱이 소리를 듣는 풍토가 있다. 반대로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면 군사적 긴장을 조장하는 호전론자로 몰리기도 한다. 이 기묘한 이중 처벌 구조 속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증발해버린다. 주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학문적 범주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수사에 불과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국제정치학과 전략학의 주류 언어에서 "주적(primary enemy)"이라는 개념이 고정된 분석 범주로 정착해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 않다. 적(enemy), 위협(threat), 잠재적 적국(potential adversary),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 같은 표현들이 쓰이며, 이 표현들은 각기 다른 위협의 성격과 강도, 관계의 가역성을 구분하기 위해 정교하게 분화된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서(NSS)나 국방검토보고서(QDR)를 펼쳐보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러시아를 "현존하는 위협", 북한을 "불량국가(rogue state)"로 분류하지 "주적"이라는 단일한 위계적 범주로 묶지 않는다.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시작해 케네스 월츠, 배리 부잔에 이르는 안보 이론의 계보를 훑어봐도 "주된 적"과 "부차적 적"을 명시적으로 위계화하는 분석 프레임은 표준 어휘로 자리잡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주적은 없는 개념이니 쓰지 말라"는 주장이 옳은가? 여기서 논리가 다시 꼬인다.


개념이 학문적으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그 개념이 지칭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주적"이라는 항목이 없다고 해서 북한이 대한민국에 가하는 위협의 성격이 다른 위협들과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헌법에 적화통일을 명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수십 차례 무력 도발과 전쟁을 일으켰고, 현재도 핵과 미사일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는 유일한 행위자다. 이 사실들의 집합을 어떤 단어로 부르든 간에, 그 내용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주적"이라는 표현 자체에 내재된 위계적 함의다. 주적이 있다면 부적(副敵)도 있어야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그렇다면 중국은 부적인가, 아니면 별개의 범주인가. 또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한다. 같은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 이 두 조항과 "북한은 주적"이라는 명제를 동시에 헌법적으로 정합시키려면 상당한 논리적 긴장을 감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 모순을 직접 해소하는 결정을 내린 바 없고, 실무적으로는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이 이 긴장을 사실상 봉합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1995년 국방백서에서 처음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했다가, 이후 표현을 완화하거나 삭제하고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같은 표현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 변화는 대북 정책의 기조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적"이라는 표현이 국제법적·외교적 맥락에서 불필요한 함의를 끌어들인다는 실무적 판단의 결과이기도 하다. 교전 상태에 있는 적국을 공식 문서에 "주적"으로 명기할 경우, 이는 외교적 교섭 채널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낳고 동맹국들과의 정책 조율에도 복잡성을 더한다.


그러나 이 실무적 판단을 "북한은 위협이 아니다"라는 인식론적 주장과 혼동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표현의 선택과 현실 인식은 구분되어야 한다. 국방부가 "주적"이라는 단어를 공식 문서에서 뺐다고 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 자체를 부인한 게 아니듯, 학술적으로 "주적이라는 개념은 표준화된 분류 범주가 아니다"라는 말이 북한 체제의 위협성을 희석하는 주장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주적 개념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은 이렇다. 국제정치학의 표준 분석 어휘로 정착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대한민국에 가하는 위협이 다른 행위자들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있다는 현실 인식은 어떤 단어를 쓰든 간에 실질적으로 유효하다.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그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며, 반대로 주적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빈곤한 인식의 증거가 되지도 않는다.


문제는 단어가 아니라, 단어를 둘러싼 정치화다. "주적이라 안 하면 빨갱이"라는 등식은 사실 판단이 아니라 충성 심사다. 반대로 "주적이라 하면 호전론자"라는 등식도 마찬가지 구조의 언어 정치다. 어느 쪽도 북한이라는 체제의 실제 성격과 그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념의 학술적 위상을 따지는 것과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견지하는 것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 둘을 혼동하거나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는 것이 오히려 논의를 가장 심하게 오염시키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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