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에 반대함

by Edward Alistair Lang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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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를 둘러싼 두 가지 상반된 유혹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그를 단순한 기회주의자나 트롤로 축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기성 정치에 맞서는 개혁적 아웃사이더로 낭만화하는 것이다. 두 해석 모두 이준석 현상의 본질을 비껴간다. 그는 분명 지적 역량을 갖춘 정치인이다. 그러므로 그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능력 없는 자의 실수는 교정 가능하지만, 능력 있는 자의 구조적 결함은 더 정교하게 작동하고 더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준석 정치의 첫 번째 근본적 문제는 공화주의적 제도 감각의 결여다. 그는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부여하는 것에 긍정적 견해를 밝히며, "윤석열에게 그 권한이 있었다면 계엄은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표면적으로 계엄을 비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계엄의 원인을 야당의 의회 권력에서 찾는 논리 구조를 내장하고 있다. 대통령제에서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를 해산할 수 있다면, 두 기관 사이의 독립적 견제 관계는 원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헌법 지식의 부재가 아니다. 권력분립이라는 공화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다는 의미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남발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준석은 그 역사적 교훈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고도 무시했다. 어느 쪽이든 대통령 후보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헌법학자 이상돈이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정치인은 자격이 없다"라고 비판한 것은 감정적 과잉 반응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였다.


두 번째 문제는 젠더 이슈를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반복적이고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TV 토론에서 이준석은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묘사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발언은 즉흥적 실수가 아니라 사전에 준비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발언의 내용보다 발언의 성격 때문이다. 여성의 신체를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계산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공론장을 의도적으로 오염시키는 방법론을 정치 전략으로 내면화했다는 의미다. 그것도 전국에 생중계되는 대선 토론이라는 가장 공적인 공간에서. 이는 일회적 실언이 아니라 반복적 패턴의 일부다.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한 여성들을 깎아내리는 발언,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과잉규제 주장, 그리고 남녀 갈등을 지속적으로 정치화해 온 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심지어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을 향해 인종차별적 뉘앙스가 담긴 영어 표현을 사용한 전력도 있다.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정당할 수 있는 것과, 혐오를 정치적 연료로 소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다. 이준석은 이 둘을 의도적으로 혼동하게 만들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해왔다.


세 번째 문제는 경제 정책의 논리적 불완결성이다. 그의 대표적 경제 공약인 최저임금 지역 자율화는 지방분권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내부 논리는 허술하다. 그는 텍사스를 모델로 제시했지만, 텍사스의 성장은 에너지 산업, 토지 가격, 연방세 혜택, 기후 조건 등 복합 변수의 산물이며 최저임금 수준이 핵심 동인이라는 근거는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공약이 지역 내수 경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단순한 노동 비용이 아니라 지역 노동자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소득 바닥 선이다. 이를 낮추면 기업 유치 효과보다 지역 소비 위축이 먼저 발생할 수 있다. 그가 "민주당 성향 지자체는 올릴 것"이라고 말한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국힘이나 개혁신당 성향 지자체는 내릴 것이라는 함의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자신의 공약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내포하면서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상대 정당의 선의에 기댄 것이다. 일본의 지역 차등 최저임금 실패 사례를 "일본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라고 일축한 방식도 문제다. 어떤 반증 사례도 "조건이 달라서"라는 말로 처리할 수 있다면, 그건 이론이 아니라 신념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등 임금 특례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준석이 모델로 제시한 캐나다의 임시 외국인노동자 프로그램은 각종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 폐지된 제도다. 공약의 근거로 제시한 사례가 이미 실패로 귀결된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무지이고, 몰랐다면 준비 부족이다.


네 번째 문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조적 무감각이다. 노인 지하철 무임 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경마장역"을 언급한 발언, 산불 피해 현장을 두고 "깔끔하게 전소됐다"라고 표현한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로 보기 어렵다. 이 발언들이 보여주는 것은 효율 중심의 사고가 인간의 고통이나 존엄과 충돌할 때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다. 효율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효율의 언어가 약자의 현실을 완전히 추상화해 버릴 때,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냉담함이 된다. 국민연금 신구 분리 공약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세대 간 갈등을 자극하는 프레임으로 청년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정작 국민연금의 도입 취지인 노인 빈곤 해결에 대한 구체적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OECD 최고 수준인 한국의 노인 빈곤율 40%는 신구 분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섯 번째 문제는 정치적 일관성의 부재다. 이준석은 "내란 세력과는 선을 그었다"라고 공언했지만, 토론회에서는 김문수 후보와 사실상 공조하며 이재명 후보 공격에 집중했다. 필요할 때 손을 잡고 필요 없을 때 떼어내는 방식은 원칙이 아니라 계산이다. 명태균 게이트 연루 논란, 법무법인 성공보수 미지급 문제, 세금 체납으로 인한 아파트 압류는 개인 도덕성의 문제인 동시에, 책임을 강조하는 그의 정치적 언어와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자신에게 10초 답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매너가 없는 거 아닙니까"라고 되묻는 사람이, 상대에게는 10초 안에 답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은 이 괴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CBS 김현정 앵커를 향한 근거 없는 언론 유착 의혹 제기, 한동훈을 겨냥한 던킨도너츠 기획설 제기 논란, 안철수를 향한 비속어 사용까지. 이준석의 정치적 공격은 논거보다 타격이 목적인 경우가 반복된다.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이준석이 자기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냉철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실제로는 감정 정치를 가장 정교하게 구사한다는 점이다. 그의 지지 기반은 정책적 동의보다 정서적 동일시에 의존한다. 20대 남성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는 이준석의 정책 비전에 대한 평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분노와 박탈감의 정치적 표현이다. 이준석은 이 감정을 조성하고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정치적 생존을 유지해 왔다. 개혁신당이 사실상 이준석 개인의 브랜드에 의존하는 구조,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와의 밀착, 정책보다 네거티브가 앞서는 토론 전략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스스로 "감정이 아닌 합리"를 표방하면서 감정 동원을 정치적 생존 기제로 삼는 이 이중성이 이준석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모순이다.


이준석을 단순히 나쁜 정치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의 문제를 개인 도덕성의 차원으로 축소한다. 그의 문제는 그보다 구조적이다. 제도 설계 감각 없이 제도 개혁을 말하고, 공론장을 훼손하면서 공론장의 언어를 사용하며, 감정 정치를 구사하면서 이성의 외피를 두른다. 젊다는 것이 곧 개혁적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이만 젊고 방법론은 낡은 정치는 기성 정치의 폐해를 세련된 형식으로 반복할 뿐이다. 한국 정치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분노를 연료로 삼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제도를 설계하고 책임을 구조화하는 진지한 정치다. 이준석의 정치가 왜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여기에 있다. 그는 그 진지함을 결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진지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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