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제와 군가산점. 두 제도의 이름을 나란히 놓으면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낀다. 여성할당제를 지지하는 쪽은 그것이 역사적 차별을 바로잡는 진보적 정책이라고 생각하고, 군가산점제를 지지하는 쪽은 그것이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마땅한 보상을 돌려주는 상식적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자신이 옹호하는 제도와 상대가 지지하는 제도가 구조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불편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두 제도를 함께 비판해야 하는 이유이자, 군가산점제를 부활시켜서는 안 되는 논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먼저 두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기계적으로 정리해 보자. 여성할당제는 영역마다 형태가 다르다. 정치 영역에서는 비례대표 후보의 일정 비율을 여성으로 채우도록 강제한다. 공기업이나 민간 대기업에서는 이사회나 임원직에 여성 비율 기준을 설정한다. 공직 채용에서는 어느 한 성별이 선발 인원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거나 밑돌지 않도록 조정 기준을 둔다. 군가산점제는 군 복무를 마친 남성에게 국가 공무원 시험 점수에 3~5퍼센트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에 이 제도를 위헌으로 결정했고, 이후 간헐적으로 부활 논의가 불거진다.
제도의 작동 방식에서 도출되는 핵심 구조를 짚어야 한다. 두 제도 모두 경쟁의 결과를 특정 집단적 속성에 따라 사후적으로 조정하며, 그 조정 비용은 해당 속성을 갖지 않는 제3자가 부담한다. 군가산점제는 군필자가 아닌 지원자의 합격 가능성을 낮추고, 여성할당제는 할당 기준에 따라 기회가 줄어드는 지원자의 합격 가능성을 낮춘다. 어느 쪽이든 경쟁에서 직접 어떤 잘못도 하지 않은 제3자가 비용을 지불한다는 구조는 동일하다. 이것이 두 제도가 같은 메커니즘을 공유한다는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두 제도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두 제도를 동등하게 정당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군가산점제에 대한 위헌 논거는 여성할당제의 설계 결함을 비판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거꾸로, 여성할당제에 대한 적극적 조치 논거의 조건들을 엄밀히 따져보면 군가산점제가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헌법재판소가 1999년 군가산점제를 위헌으로 결정했을 때 핵심 논거는 두 가지였다. 첫째. 군 복무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사람들. 즉 여성과 장애인에게 그 면제의 대가를 취업 경쟁에서 다시 치르게 함으로써 이중의 불이익을 가한다. 병역 의무 자체가 이미 남성에게 부과된 부담인데, 그 부담을 이행했다는 사실을 이행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경쟁 우위로 전환하는 것은 애초에 의무 이행의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을 벌주는 셈이 된다. 둘째. 군 복무 경험이 공직 수행 능력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도 시험 결과를 일괄적으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은 해당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인데, 가산점은 그 측정값에 직무와 무관한 변수를 끼워 넣는다.
이 두 논거는 지금도 논리적으로 유효하며, 어떤 새로운 반론도 이를 뒤집지 못한다. 그리고 동일한 논거의 구조가 설계가 조악한 여성할당제에 대한 비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무 수행 능력과 무관한 집단적 속성을 기준으로 경쟁 결과를 조정할 때, 그 조정이 정당화되려면 매우 엄격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들이 무엇인지는 뒤에서 다룬다.
먼저 예상 가능한 반론들을 차례로 검토하자. 이 종류의 논의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비판들이 있고, 그것들을 회피하면 논의 자체가 설득력을 잃는다.
첫 번째 반론은 가장 흔하게 나온다. 여자와 군필자가 같으냐는 것이다. 이 반론의 전제는 여성과 군필자가 처한 조건이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두 집단에 대한 제도적 처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범주 오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론은 논점을 빗나간다. 이 글의 주장은 두 집단의 처지가 같다는 것이 아니라, 두 제도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군필자와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는 사실 자체는 두 제도의 구조적 유사성을 반박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두 나라의 조세 제도가 역진적 구조를 공유한다는 분석에 대해, "그 두 나라는 처한 상황이 다르지 않냐"라고 반박하는 것과 같다. 상황의 차이와 구조의 분석은 별개의 층위다.
두 번째 반론은 그렇다면 군 복무를 마친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가장 허술한 반론이다. 군가산점제를 반대한다는 것이 군 복무에 대한 보상 자체를 반대한다는 뜻이 아님은 자명하다. 헌재 역시 지원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했지, 지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비판하는 것은 보상의 존재가 아니라 보상의 방식이다. 타인의 취업 기회를 희생시켜 보상하는 방식은 그 비용을 군 복무와 아무 관련 없는 제3자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부당하다.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의 G.I. Bill이 그 모델이다. 군 복무자에게 대학 등록금 지원, 직업 훈련 프로그램, 저금리 주택담보 대출, 창업 지원 같은 실질적 혜택을 직접 제공하는 방식은 제3자의 기회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복무자에 대한 채무를 이행한다. 군가산점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정작 G.I. Bill 같은 실질 지원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군 복무자에 대한 진정한 보상보다는 타인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세 번째 반론은 여성할당제는 구조적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므로 군가산점제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반론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적극적 조치의 이론적 정당성은 단순히 특정 집단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구조적 불평등이 현재의 경쟁 조건 자체를 불공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왜곡을 교정한다는 데 있다. 이 논리는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교정 대상이 되는 구조적 불평등이 현재 경쟁 조건에 실제로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할당제라는 수단이 그 불평등을 교정하는 데 효과적이어야 한다. 셋째. 그 비용을 부담하는 제3자가 해당 불평등의 원인과 실질적 연관이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 이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정치 영역의 비례대표 여성 할당은 첫 번째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한다. 정치 진입 장벽은 단순한 능력 경쟁 외에도 네트워크, 자금, 공천 구조에서의 성별 편향이 실증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개 채용 필기시험에서의 할당은 조건 충족이 훨씬 불명확하다. 필기시험은 그 자체로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측정 도구이며, 만약 시험 결과의 성별 분포가 구조적 차별이 아닌 지원자 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면 할당제는 교정이 아니라 왜곡이 된다. 게다가 비용을 부담하는 제3자가 해당 불평등의 원인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세 번째 조건은 더욱더 논쟁적이다. 20대 여성 지원자와 경쟁하는 20대 남성 지원자가 과거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의 책임을 져야 할 역사적·개인적 이유는 매우 희박하다.
반면 군가산점제는 이 세 조건을 더더욱 충족하지 못한다. 군필자가 취업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집단이라는 실증적 근거가 약하다. 군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은 분명 실재하지만, 그것이 여성이나 장애인이 직면하는 취업 장벽의 구조와 성격이 같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가산점의 비용을 떠안는 제3자. 즉 여성 지원자나 장애인 지원자가 군필자의 경력 단절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네 번째 반론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혹은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면 된다는 논리다. 이 방향의 주장은 적어도 논리의 일관성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군가산점제를 정당화하는 논거가 아니라,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따로 다뤄야 하는 별개의 정책 의제다. 현재의 병역 제도를 유지한 채로 가산점제를 운용하는 것의 부당함은 여성 징병 논의와 독립적으로 성립한다. 제도의 정당성은 그 제도가 현재 작동하는 조건 안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반론으로,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면서 군가산점제도 반대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는 냉소가 있다. 이 반론은 논리적이지 않다. 특정 수단의 결함을 비판하는 것이 목적 자체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군필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산점제라는 방식을 거부할 수 있고, 노동 시장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인정하면서도 공채 할당제가 그것을 교정하는 적절한 수단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두 비판은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성립한다.
이 모든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군가산점제가 위헌인 이유는 타인의 기회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방식으로 보상을 설계했기 때문이며, 그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직무 수행 능력과 무관한 기준으로 선별되기 때문이다. 이 논거는 지금도 유효하고, 부활해서는 안 된다. 여성할당제는 모든 유형이 동일하게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구조적 불평등이 확인되고, 할당이 그것을 교정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비례적인 수단이며, 비용을 부담하는 제3자와 해당 불평등 사이의 연관이 설명할 수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 맥락에서의 할당제는 군가산점제와 동일한 구조적 비판에 직면한다.
결국 두 제도를 나란히 놓는 이유는 두 제도가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에 들이대는 원칙을 다른 하나에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제도에는 관대하고 반대하는 제도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이 논쟁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그리고 가장 정직하지 않은 태도다. 원칙은 편리할 때만 꺼내는 도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