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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Jan 16. 2018

사직서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은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만 그 한 번에 잘 정리되지 않을 감정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냥 묻어두고 가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어차피 지금은 내가 좋은 선택을 내린건지 알 수도 없지만 좋은 사람들과 일을 5년간 해왔고, 일하던 회사를 내가 많이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5년 3개월, 정확히 2012년 10월 8일 입사 후 2017년 1월 12일의 퇴사일 까지 일일이 기록할 수 없는 꿈 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마냥 좋았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애사심에 퇴사를 미루었다고도 할 수 없고 퇴사를 하려고 애사심을 외면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결단을 내리지도 않았고 결단을 내릴 수도 없어서, 아니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만족해서 지내온 시간이 5년이었다. 시간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쏜살 같았다. 빠르게 지나갔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을 온전히 회사에 쏟았지만 역부족인 순간이 많았다. 물론 그 앞에 '나름, 내 나름대로'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 모든 것은 역부족이었다.

모두들 열심히 했다. 내가 마주한 직장동료들의 모습은 항상 최선에 최고의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었다. 배울 점도 많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또 다른 대학교를 다닌 기분이었다. 매니저에게, 선배들에게, 동료들에게, 후배들에게 너무도 감사했다. 일 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인간 관계에 서툰 편이었던 나를 많이 이해해주고 상하를 막론하고 많은 조언들로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분들이었다. 이기적인 욕심에 놓고가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두렵기도 하다. 아마 새로운 곳에서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라고 생각한다. 실패하더라도 이 곳의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마지막까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모두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진심로 감사했다는 말이다. 한 번에 정리가 되지 않아서 남은 이야기와 생각들은 동료들과 천천히 밥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술을 마시며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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