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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May 07. 2018

감정선

어쭙잖은 안부 묻기, 어쭙잖은 맥주캔 따기, 어쭙잖은 위로 하기

사람들의 곁에 남는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는 여러 사람들의 곁에 남으려고 했지만 여러 번 실패했고, 이 순간들이 우리 사이에 있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직감했는지 모른다. 날이 너무 좋아서 밖에서 마신 맥주가 우리의 마지막 건배였을지도 모르고, 비가 와서 함께 쓴 우산이 우리에게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고, 집 앞에서 함께 걷던 그 길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새벽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쭙잖은 안부 묻기, 어쭙잖은 맥주캔 따기, 어쭙잖은 위로 하기. 하나도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감정적인 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적인 것들을 일으켜 세우는 장치 같은 것들, 누워있는 감정 같은 것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 당신에게 연락을 하게 하거나, 내 주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 이성 앞에 감정을 세워두고 판단하는 바보 같은 실수들을 미워한다. 그래서 감정적인 말들로 상대를 좋아하거나, 미워하거나, 그 감정이라는 것에 올려진 그 이외의 행동들에 대부분 부정하고 싶어 지는 밤이 있다. 어쭙잖은 글을 적거나, 어쭙잖은 통화를 건다거나, 어쭙잖은 밤 산책을 한다거나 모두 대부분 어리석은 행동일지 모른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 물어보고 싶다. 그 어리석음이라는 것에 한참을 빠져서 유영하다 보면, 그것을 탐하다 보면 누군가 나를 구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다. 밧줄을 던져주어서,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와 나를 꺼내 주어서, 뭍으로 나온 나에게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주고. 슬럼프라는 것이 대부분 그런 일들이겠지만 푹 잠기었다가 나오면 되는 일이겠지만, 이것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우리는 슬럼프를 슬럼프라고 부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시작점이 어디인지, 종점은 어디인지, 슬럼프의 구간을 찾지 못해서 내 이름이 슬럼프가 되기도 한다. 열꽃이 오른 얼굴에 차가운 물수건을 가만히 대어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람들의 곁에 남지 못 해서 섬이 되어 버린다. 아주 서툴고 어색해서 단어도 몇 마디 남기지 못 하고 말이다. 한 밤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아닐 일들이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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