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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베리 Dec 09. 2016

그녀에게

그 남자 이야기

"여보 나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건 이제 2개월도 채 안된 강아지 까망이 뿐이었다. 이름만 들었을 땐 까만색 강아지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사실 녀석은 점박이이다. 장인어른은 꼭 팬더 같다고 했다. 처갓집에서 데려올 때 5주 정도의 어린 새끼였지만 열흘 만에 제법 커져서는 낑낑대던 계단도 곧잘 내려오곤 한다. 녀셕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어 왔어?"   

침실에서 그녀가 나온다. 손에 들려있는 렌즈통을 보니 아마 화장실에서 렌즈를 빼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마치 '내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인데도 나와서 반겨주는 거야. 고맙지?'라는 표정으로 한번씩 웃어 보이더니 내가 뭐라고 채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화장실로 냉큼 들어간다. 여전히 내 발 밑에 있는 까망이를 바라본다. 녀석의 꼬리는 풍차처럼 빠르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날 무겁게 했던 사원증을 벗어던지고 소파에 몸을 맡겼다. 가방은 이미 현관에 버려진 지 오래고 거실 베란다에서 까망이가 내 양말을 먹잇감인지 장난감인지 모를 눈빛으로 물어뜯고 있다. 렌즈 세척을 다 마친 그녀는 거실에 오자마자 까망이를 부르더니 함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사료를 주려는 것 이리라.


"우리 저녁 뭐 먹을까?"

"글쎄"

머리를 질끈 묶으며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저 단어에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 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매번 들어도 모르겠다. 밥을 하기 싫다는 건가? 그래서 외식?

"나가서 먹을..."

"싫어 돈 없어"

그녀는 돈이라면 쩔쩔매는 사람이다. 드레스룸에 있는 그녀의 옷들은 최소 5년 이상 된 옷들만 남아있을 정도로 신중하게 구매하고 또 잘 사지 않는 편이었다. 맨날 옷이 없다고 징징 대지만 그래도 옷을 사지는 않았다. 그냥 불평 한 번 늘어놓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로 메뉴판을 들면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고르기 일 쑤였다. 내가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고 내가 사준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다. 천성이 검소한 사람이었다. 그런 점을 우리 엄마는 항상 강조하고 칭찬했다. 그래서 예쁘다고 했다. 남들에게 며느리 자랑을 할 때 1순위가 외모도 성격도 아닌 근검절약이었으니까. 물론 나도 그런 모습에 좋아서 결혼한 거였지만 가끔은 억만장자처럼은 아니어도 제발 쓸 땐 쓰자고 말하고 싶다.

"배고픈데... 김치찌개 해 먹을래? 내가 고기 사 올게"

주방에서 냉장고를 열며 먹을 게 있는지 보던 그녀는 '또 김치찌개야? 지겹지도 않니?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지금 우리는 배가 고프고 냉장고엔 김치밖에 없으니까'와 같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그래 좋아 아 햇반도 같이. 그리고 고기는 3천 원치면 적당하겠어 더 많이 사 오지 마" 한다.

"... 밀키스 사와도 돼?

그녀가 안된다고 할 걸 뻔히 알면서도 물어본다. 오늘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날엔 꼭 탄산음료가 당긴다. 뭐 그녀의 말에 의하면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 아니라 기분 좋은 날도, 울적한 날도, 그냥 아무렇지 않은 날도 탄산음료를 찾는다고 한다. 결국 365일 찾는다는 거다. 그녀는 탄산이 몸에 안 좋다고 누누이 잔소리하지만 끊을 수가 없다. 가끔은 담배보다 더 중독성이 있는 거 같다. 나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금연이 아니라 금탄산 일지도 모르겠다.

"음... 그래그 럼 대신 웰치스도 부탁해, 포도맛으로. 알지?"

그러나 웬일로 허락을 해주는 그녀에게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끄덕끄덕으로 대신한다. 내가 왜 고마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웰빙 OO라고 불릴 만큼 그녀는 몸에 해로운 것은 절대 하지도 먹지도 않는다. 대학교 때부터 워낙 유명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너는 정말 건강하게 장수할 거 같아'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먼저 죽을 거라고, 자기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럼 남겨진 나는? 정말 끝까지 이기적인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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