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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정 Mar 07. 2024

프롤로그

이것은 벌써 5년이나 된 이야기 

일본에 막 도착했던 시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좋아한다. 지금은 익숙한 사물, 장소, 사건들이지만, 이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5년 전에 내가 도착했던 도시는 서울과 비슷한 면이 있는 동시에, 매우 낯설었으며, 고유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찍고 기록하기 바빴다. 심지어 이곳은 맨홀 뚜껑마저도 흥미로운 곳이었다.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를 건너며

얼마 전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를 건널 때의 일이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인 수많은 인파를 피해서 오로지 빨리 횡단보도를 건너서 목적지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호기심 어린 또는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며 길을 건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었다. 사방팔방으로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인파의 물결, 그 중심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여유로움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아니, 이 인파 속에서 이걸 한다고? 근데 이게 되네?' 이런 느낌!) 도쿄에 처음 도착했던 2019년 4월의 날들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찍는 사진들에는 그때 기록한 것과 같은 도쿄의 멋이 사라진 듯하다. 일상이 된다는 것은 낯설게 보는 눈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오히려 코로나로 국경이 열린 후 3년 만에 찾은 서울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곳에서 더 많은 풍경 사진을 찍었다. 

나는 첫 에세이 ⌜당신에게도 아이슬란드를⌟을 출간하고, 우연한 기회로 잡지 ⌜일본어 저널⌟에 일본 생활에 관한 글을 기고했었다. 그 후로는 호흡이 긴 글은 쓰기가 망설여졌다. 나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쓰기보다는 읽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도리어 속도가 되어 버렸다. 갑자기 남편이 다른 나라로 발령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또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 동안에도 이런 가능성이 있긴 있었지만 점점 구체화되는 걸 보고 있자니 이 시절을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라우드 도쿄: 존재하고, 사라지고, 등장하는 도쿄를 기록하다

왜 다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조르주 페렉은 '장소들'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파리의 장소를 골라서 약 12년간 기록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어린 시절 살았던 '빌랭 거리'도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보통 이하의 것들⌟에는 '빌랭 거리'를 6년 동안 묘사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빌랭 거리는 6년 동안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진다. ⌜라우드 도쿄 Loud Tokyo⌟는 '빌랭 거리'와 같은 프로젝트이다. 존재하고, 사라지고, 등장하는, 도쿄에서 내가 보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는 나의 프로젝트이다. 한마디로 도쿄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싶다는 말이다. 이곳에서의 일상들을 기록함으로써 잊히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참고로 기억력이 몹시 좋지 않은 편이다.)

도쿄에서의 5년을 눌러 담은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도쿄에서의 시간은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코로나를 핑계로 우울을 핑계로 이곳에서의 시간을 게을리 보냈던 나보다, 당신은 더 많은 도쿄를 경험하길 빌며 글을 마친다. 당신의 깊고 진한 도쿄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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