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경 Oct 27. 2020

10년째 묵혀둔 장롱면허를 꺼내들며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피할 수 있어도 일단 해보자!


며칠 전부터 운전 연수를 고 있다. 면허를 대학 입학 전에 땄으니까, 거의   만에 운전석에 앉아보는 것이다.  옆에서만 보던 핸들을  손으로  쥐고, 발로 더듬더듬 엑셀과 브레이크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왼편의  운전석,   자리가 아닌 것만 같다. 시동을 거는 행위만으로도 한껏 쪼는 내가 보인다. '과연 운전을 잘할  있을까' 벌써부터 의심 어린 나의 불안감이  안을 가득 메운다.


실은, 어릴 적부터 자동차는 내게 하나의 트라우마를 남긴 존재였다. 교통사고로 인해 가족이 생을 떠났고 때문에 이 운전석에서의 중대한 실수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나아가 그의 가족들 삶에도 끈적하고도 어둑한 기운을 흩뿌린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기에. 더없이 이 자리가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운전을 한다는 행위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파괴성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긴 시간을 장롱 면허자로 살아왔다.


아픈 사고로부터 어느덧 수 십 번의 계절이 오고 갔고 슬픔과 혼란, 아픔과 외로움이 뒤섞인 세월을 지나 이제는 잔잔한 호수처럼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때'를 맞은 걸까. 이젠, 두렵다는 이유로 평생 피하기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에 짓눌려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선명한 두려움을 흐릿하게 만들어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존재이고 싶었다. 그렇게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두려움은 흐릿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전연수를 받는 한 회, 한 회마다 마치 미션을 깨는 것만 같다. 운전은 '배운다'의 개념보단 '익힌다'가 어울리는 과정이었다. 운전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렇게 운전을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지식과 감각을 연결 짓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필요했다. 또한, 어제의 주행에선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맸더라도 오늘의 주행에선 '아, 이런 느낌이구나!' 깨닫는 나를 발견했다. 되짚어보면 오늘의 그 깨우침은 어제의 도로 주행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자연스레 나는, 한 번에 잘 해내지 못했단 이유로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술에 배부르려는 욕심도 내려놓게 되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나의 운전 감각이 나아지리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냥 막연한 긍정이 아니었다. 실제 매번 나아지는 것을 체감하면서 스며든 확신이라, 두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마음의 앰보싱 역할을 해주었다.


그랬다. 처음으로 운전을 시도하며 느껴지는 '막막함과 두려움'은, '후-우' 긴 한숨을 내쉴 때 거두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반복된 시도에 의해서 거두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핸들을 미세하게 돌려내며 차체의 움직임을 느끼려는 노력을 통해 거두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뭐야, 나도 할 수 있잖아!'라는 짜릿하고도 소소한 성취감은 '어떻게 하면 차선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운전을 부드럽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우회전을 잘할 수 있을까?'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싹틔웠다. 질문의 새싹이 자라고 자랄수록, 필요한 물을 뿌려주는 만큼 막막함과 두려움은 흐릿해져 갔다.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연수 중에 지적받게 되는 여러 실수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는 점이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실수로 인해 내가 미숙한 부분을 인지할 수 있어서 너무도 고마웠다. 미숙하다는 것조차 모른 채 운전했다간 더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거니까. 부족한 부분을 알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서 능숙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 '실수'란, 초보자에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초보 운전'을 크게 써붙이고 도로주행을 나가며 오늘 나는 또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오늘의 실수를 통해 또 무엇을 배우고 익히게 될지를 기대하게 된다. '괜히 시작했나'란 생각이 들만큼 첫 운전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선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피로감에 파김치가 되었는데, 지금은 '더 실력을 쌓고 싶다'란 생각으로 즐기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시작하고 볼 일이다.




운전 연수를 받는다고 해서 앞으로의 나의 운전 인생에서 맞이할 모든 케이스를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도로마다의 환경과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니까. 특히나 내가 이러한 다양한 변수를 모두 통제하며 운전할 수도 없는 일이다. 때문에 운전 중에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삶'을 운전하는 원리와도 맞닿아있는 지점이다. 원칙과 철학이 없으면, 그리고 그 원칙과 철학이 단단하지 않으면 새로이 마주치는 역경 속에서 거세게 흔들릴 수 있으니 말이다. 때론,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만이 보다 '안전'하게 다양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내가 연수를 받으며 기본기를 닦아 나가듯, 나의 삶 속에서도 매일의 고민과 성찰의 결과물들을 쌓아나간다.


십여 년의 장롱면허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운전석에 앉고자 하는 도전을 통해 나는 '두렵다고 피하지만 말고 꼭 시도해보라'는 삶의 원칙을 세우고 다지는 중이다. 시도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회피함으로써 얻는 안도감보다 더 값지단 걸 알아가고 있으니까.



피할 수 있어도, 피하지 말라.
일단 시작하면 즐기는 때가 올 것이니.





Photo by Julian Hochgesang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취약하면 어른이 아니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