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피할 수 있어도 일단 해보자!
며칠 전부터 운전 연수를 받고 있다. 면허를 대학 입학 전에 땄으니까, 거의 십 년 만에 운전석에 앉아보는 것이다. 늘 옆에서만 보던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발로 더듬더듬 엑셀과 브레이크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왼편의 이 운전석, 꼭 내 자리가 아닌 것만 같다. 시동을 거는 행위만으로도 한껏 쪼는 내가 보인다. '과연 운전을 잘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의심 어린 나의 불안감이 차 안을 가득 메운다.
실은, 어릴 적부터 자동차는 내게 하나의 트라우마를 남긴 존재였다. 교통사고로 인해 가족이 생을 떠났고 때문에 이 운전석에서의 중대한 실수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나아가 그의 가족들 삶에도 끈적하고도 어둑한 기운을 흩뿌린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기에. 더없이 이 자리가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운전을 한다는 행위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파괴성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긴 시간을 장롱 면허자로 살아왔다.
아픈 사고로부터 어느덧 수 십 번의 계절이 오고 갔고 슬픔과 혼란, 아픔과 외로움이 뒤섞인 세월을 지나 이제는 잔잔한 호수처럼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때'를 맞은 걸까. 이젠, 두렵다는 이유로 평생 피하기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에 짓눌려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선명한 두려움을 흐릿하게 만들어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존재이고 싶었다. 그렇게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두려움은 흐릿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전연수를 받는 한 회, 한 회마다 마치 미션을 깨는 것만 같다. 운전은 '배운다'의 개념보단 '익힌다'가 어울리는 과정이었다. 운전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렇게 운전을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지식과 감각을 연결 짓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필요했다. 또한, 어제의 주행에선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맸더라도 오늘의 주행에선 '아, 이런 느낌이구나!' 깨닫는 나를 발견했다. 되짚어보면 오늘의 그 깨우침은 어제의 도로 주행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자연스레 나는, 한 번에 잘 해내지 못했단 이유로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술에 배부르려는 욕심도 내려놓게 되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나의 운전 감각이 나아지리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냥 막연한 긍정이 아니었다. 실제 매번 나아지는 것을 체감하면서 스며든 확신이라, 두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마음의 앰보싱 역할을 해주었다.
그랬다. 처음으로 운전을 시도하며 느껴지는 '막막함과 두려움'은, '후-우' 긴 한숨을 내쉴 때 거두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반복된 시도에 의해서 거두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핸들을 미세하게 돌려내며 차체의 움직임을 느끼려는 노력을 통해 거두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뭐야, 나도 할 수 있잖아!'라는 짜릿하고도 소소한 성취감은 '어떻게 하면 차선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운전을 부드럽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우회전을 잘할 수 있을까?'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싹틔웠다. 질문의 새싹이 자라고 자랄수록, 필요한 물을 뿌려주는 만큼 막막함과 두려움은 흐릿해져 갔다.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연수 중에 지적받게 되는 여러 실수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는 점이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실수로 인해 내가 미숙한 부분을 인지할 수 있어서 너무도 고마웠다. 미숙하다는 것조차 모른 채 운전했다간 더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거니까. 부족한 부분을 알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서 능숙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 '실수'란, 초보자에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초보 운전'을 크게 써붙이고 도로주행을 나가며 오늘 나는 또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오늘의 실수를 통해 또 무엇을 배우고 익히게 될지를 기대하게 된다. '괜히 시작했나'란 생각이 들만큼 첫 운전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선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피로감에 파김치가 되었는데, 지금은 '더 실력을 쌓고 싶다'란 생각으로 즐기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시작하고 볼 일이다.
운전 연수를 받는다고 해서 앞으로의 나의 운전 인생에서 맞이할 모든 케이스를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도로마다의 환경과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니까. 특히나 내가 이러한 다양한 변수를 모두 통제하며 운전할 수도 없는 일이다. 때문에 운전 중에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삶'을 운전하는 원리와도 맞닿아있는 지점이다. 원칙과 철학이 없으면, 그리고 그 원칙과 철학이 단단하지 않으면 새로이 마주치는 역경 속에서 거세게 흔들릴 수 있으니 말이다. 때론,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만이 보다 '안전'하게 다양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내가 연수를 받으며 기본기를 닦아 나가듯, 나의 삶 속에서도 매일의 고민과 성찰의 결과물들을 쌓아나간다.
십여 년의 장롱면허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운전석에 앉고자 하는 도전을 통해 나는 '두렵다고 피하지만 말고 꼭 시도해보라'는 삶의 원칙을 세우고 다지는 중이다. 시도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회피함으로써 얻는 안도감보다 더 값지단 걸 알아가고 있으니까.
피할 수 있어도, 피하지 말라.
일단 시작하면 즐기는 때가 올 것이니.
Photo by Julian Hochgesa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