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하나님의 역사를 대행하는 김용철 선지자를 따르는 길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드러낼 때마다 2002년에 제자가 된 조나영 선생이 집안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성경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연이 생각난다고 <선생님_10. 선생님들의 가르침(6)> 편에 썼다.
누구든지 하나의 뜻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활동을 해 나갈 때 가족의 응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반대에 직면하는 사람도 있다. 응원하는 가족은 내가 그것을 성취해 가는 과정과 결과가 그들의 세상사 경험에 비춰 볼 때 대개 돈과 명예와 영향력 측면에서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갖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가족은 그것을 위한 활동의 과정과 결과가 나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응원도 반대도 피붙이인 나를 사랑하기 때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가족 모두가 지혜롭다면 그 뜻과 목표에 관한 정보들을 충분히 교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는 종교에 관해서라면 가족의 종교관이 단단한 경우, 한쪽에서 정보를 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진지하게 알아보려는 것보다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종교적 뜻과 목표에 대해 가족이 반대할 때, 내가 그 길을 하나하나 설득하며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마찰과 불협화음과 소리소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그런 부정적 대립을 최소화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숙제다.
대립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크고 작은 반대에 부딪힐 때는 그만큼 언쟁이 벌어지고, 서로 지쳐 언급을 회피하기도 한다. 언쟁이 벌어질 때는 모두 속이 상하고 하루종일 불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으로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전투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가고자 하는 뜻과 목표가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렬한 것이라면 꼼짝달싹밖에 못하는 상황에서도 오직 고지 탈환을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릿속에서 작전을 짤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목표를 향해 뚫고 나가야 하는 작전을 세우는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는 예수의 말씀에 나오는 좁은 문과 협착한 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런 전투적인 생각과 행동이 과연 가족에 대하여, 특히 부모에 대하여 맞는 것인지, 잘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딸들이 범죄치 말라는 목적으로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리실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제5계명으로 내리셨고,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부모에 대한 공경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대역자에게 내려 듣는 대로 기록하게 하셨으며, 나는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에 근거한 뜻과 목표를 세워 활동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나의 율법을 따를 수 있는 자이며 지킬 수 있는 기본이 된 자이니, 그렇지 아니한 자는 기본이 아니 된 자이니라. 선지자야! 너희 인간은 너희를 낳아 준 육신의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나 여호와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겠는가?
ㅡ 새로운성경 134번째 하나님 말씀 (2000.1.18.) (이하 몇 번째 말씀인지만 표기)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한 자
너희들을 낳아 준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며 형제와 화목하지 아니한 자는 나 여호와에게 기도하며 하늘에 오르고자 하여도 오를 수 없음이니, 나의 십계명에 있는 대로 너희들이 부모를 공경함이 근본이니라. 너희들이 나를 빙자하여 너희 부모를 공경함에 게을리하면 이는 너희들이 면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ㅡ 859번째 (2000.12.3.)
나에게 공경하는 마음의 새싹
네 부모를 공경하는 그 작은 사랑의 마음과 아름다운 마음속에서 나에게 공경하는 마음의 새싹이 터 나옴이니, 이를 혼동하여 나를 빙자하여 너희 부모에게 공경함을 소홀히 하는 자가 아무리 기도를 드린다 하여도 나의 귀에 들리지 아니함이니, 너희 육신의 부모에 대한 작은 사랑과 나에 대한 큰 사랑에 너희들이 순종하는 마음을 구분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이니라.
ㅡ 859번째 (2000.12.3.)
육신의 보이는 부모도 공경치 아니하는 자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마음과 공경하는 자세에서 나에게 오를 수 있음이니라. 육신에서 낳아 모두를 다 바쳐 너희들을 길러 준 그 부모에게 내가 공경하라 하였거늘, 육신의 보이는 부모도 공경치 아니하는 그러한 자가 보이지 않는 나 여호와를 공경하며 기도하며 경배한다 한들 그것이 진실성이 있겠더냐? 너희들이 구원을 받고 저만 편하고자 가진 자 더 갖고, 명예로운 자 더 명예롭고자 함은 너희들의 욕심이니, 너희 부모부터 먼저 공경하는 것을 배우라.
ㅡ 1,165번째 (2001.2.8.)
여호와 하나님과 네 부모와의 연계
네 부모를 공경하라. 낳아 주고 길러 준 네 부모를 공경함이 간음하지 말며 도적질하지 말라 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함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너희를 길러 주고 낳아 준 부모의 뜻과 공을 앎은 나 여호와가 하늘에 있어 너희들에게 생명을 내려 줌을 앎이니, 이는 그와 같이 연계되어 있음이니라.
ㅡ 1,577번째 (2001.10.3.)
이와 같은 부모 공경과 하나님 공경의 관계성을 진리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대역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여한 임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부모의 반대에는 그야말로 난감하다. 대립의 상태 자체가 보이든 안 보이든, 정도가 심하든 가볍든 양자에게 고통을 준다.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에 근거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ㅡ 마태복음 10:33-38
이러한 예수의 말씀을 오해하여 가족과의 대립을 당연시하고 가족에게 등 돌린 채 나의 신념에만 전념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런 태도는 부모형제와 천륜 즉 하늘이 맺어 준 관계를 끊더라도 교회나 목사나교주를 섬기라 세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악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려고 노력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불가한 것이다.
1999년 8월 하나님께서 대역자인 김용철 선지자에게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니라. 너는 나의 말을 들으라. 십계명을 암송하고 나의 음성을 책으로 기록하여 만백성을 구하라."는 말씀을 내리고 나서부터 시작된 '심판의 시대'를 역사하는 중에, 김용철 선지자도 화평이 아니라 검을 받음으로써 가족의 반대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법전에서 읽을 수 있으며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로 전해지는 사연도 들을 수 있다. 그런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대중적으로 보라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해 주셨다.
대중 속의 한 사람으로 접어 두고 지우라
네가 60평생에 고달프고 힘들며 즐거운 희비애락의 세월 속에서 살아온 너의 습성을 하루아침에 내가 너에게 버리라 함과 너에게 딸린 자식과 너의 아내와 너의 부모 형제 모든 인간관계를 대중 속의 한 사람으로 접어 두고 지우라 함은 네가 할 수 없으며 행하기 힘든 것을 내가 아나, 너를 가혹히 다스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기에 너에게 내가 그와 같은 명을 내렸으며, 내가 너에게 이르기를 금욕하라 이르는 것 또한 네가 만일에 인간관계의 욕심과 인간의 사악한 마음에서 너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만에 하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나의 법전을 전하는 일이 중단됨은 물론이요, 너 하나로 하여금 나의 법전이 중단되며, 이가 사탄의 부르짖음이라는 말을 듣거나 만백성을 구하는 길이 잘못되면 아니 되기에 내가 너에게 그와 같이 엄한 명을 내리며 내가 너에게 지키도록 시행했으니 너는 이를 이미 알고 있었음이라 나는 알고 있느니라.
ㅡ 649번째 (2000.9.26.)
대중 속에서 구원하는 상대로 보는 마음
한 끼의 고기 반찬을 먹으며 따뜻한 이불 속에서 편히 자며 즐거운 마음과 육신의 즐거움을 찾음으로써 제 마음속에 파고드는 사탄들이 침투하는 그 고통을 제가 견제하지 못하옵나이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 제가 좌우를 생각할 수 없으며, 제 육신의 편안함을 생각할 수 없으며, 저 자신의 영화를 생각할 수 없으며, 제 처자식과 저희 모든 인간을 똑같이 대중 속에서 구원하는 상대로 볼 수 있는 마음 외에는 다른 마음을 갖지 아니하도록 저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옵소서.
ㅡ 805번째 하나님 말씀 중에 김용철 선지자의 말씀 (2000.11.20.15:05)
대중적으로 보며 모두를 다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완벽한 백성으로 만들어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길을 넘어 정상에 서서 백기를 들고 방황하는 백성에게 너를 따르라 하며 그 길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 너희가 해야 할 길이기에 먼저 가는 것이니라. 먼저 가는 자, 부모와 형제와 이웃의 그 모두를 생각하고 마음을 두고 가면 고통스럽고 힘든 길을 갈 수 없기에, 모두를 대중적으로 보며 모두를 다 사랑하라 하며 모든 마음을 비우라 하며, 너희에게 욕하는 자, 너희에게 피해를 주는 자, 그들이 있어서 너희는 행복이라 그리 말하라 하였음이니라. 너희가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이니라. 가시덤불, 외나무다리 길을 놓고 가는 너희는 상처투성이 몸이니, 그래서라도 너희가 정상에 올라오면 그때부터 나에게 오르는 길에 선두주자가 되지 않더냐? 너희가 백기를 들고 감으로 그들이 따라올 것이며 만백성이 그를 들고 전할 수 있는 그와 같은 너희가 되기에 오늘에 상처투성이인 그 길을 가고 있음을 잊지 말라.
ㅡ 6,126번째 (2003.5.8.)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부모형제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대중적으로 보고 그들 모두를 사랑하면서 구원하라는 대명을 내리시면서 그 길은 가시덤불, 외나무다리, 성처투성이의 길임을 명심하라 하셨다. 따라서 선지자를 따르는 제자들도 같은 길에서 그를 따라가며 임무를 일부분씩 맡아 수행하기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외나무다리 _ pinterest
모든 인간관계를 대중적으로 보면서 사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내려주셨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너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너를 적대시하는 이를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이니라. 진정한 사랑은, 너를 음해하고 멸시하고 시기하며 너와 뜻이 같지 않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니라.
ㅡ 68번째 (1999.12.20.)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의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는 너의 이웃에 있는 잘 되는 사람을 칭찬해 주며, 못 되는 자를 격려해 주며, 너보다 못한 자에게 고개 숙여 배우며 못한 자를 이끌어 주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함이니, 이를 명심하여 지키라. 이와 같이 십계명의 뜻을 너의 제자들에게 전하라.
ㅡ 346번째 (2000.5.19.)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라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창공을 날 수 있으며, 물 위를 걸을 수 있으며, 바람과 같이 온 지구를 다 감싸고 그리하고도 남음이 있는 마음과 같음이니라.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라. 그리고 그 마음이 네가 생활 속에서 하루에 백이면 백, 천이면 천, 그 모두가 다 진실된 사랑으로써 모두를 대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니라. 네가 하루에 백 번, 천 번의 움직이고 활동하며 상대하는 생활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진실된 마음이요, 진실된 사랑이 아니라면 너는 삶의 가치가 없느니라. 단 한 번이라도 진실된 사랑과 진실된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며, 그와 같은 네 속에서 나오는 네 생각이 아니라면 너는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라.
ㅡ 1,080번째 (2001.1.22.)
바람처럼 모두를 사랑하라
네가 그곳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뛰어들어가 나의 피조물 만백성을 너의 제자들과 같이 하나하나 정화시켜 낚시로 고기를 낚듯이 그들을 낚아 하늘에 올려 보내야 하는 것이 너의 대임이니, 피하려 하지 말며 도망하지 말며 거부하지 말라. 바람처럼 그 모두를 사랑하라, 선지자야!
ㅡ 1,118번째 (2001.1.28.)
모두를 다 사랑하라
내가 너에게 이르기를, 나를 향하여 믿음을 갖는 자는 모두를 다 사랑하라 하였음이니라. 너희들은 나를 전지전능한 여호와 아버지라 하며, 내가 다 창조하여 만들었다 하면서, 내가 만든 것은 다 만든 자가 필요하여 그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냈거늘, 어찌하여 이를 이단이요 사탄이요 마귀라 적대시하며 적군처럼 그와 같이 생각하고 너희 가슴의 문을 열지 못하는가?
ㅡ 1,156번째 (2001.2.5.)
하나님께서는 지금껏 인간세상에 살아온 경험에 비춰볼 때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모두를 사랑하라는 명을 왜 내리시는 것일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기에 그분은 모두를 사랑하신다. 때문에 그분의 아들딸인 인간도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갖기를 바라실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뜻을 위배하며 잘못 가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새로운 성경을 가슴에 안고 정독함으로써 하늘에 오르는 찬란한 빛을 따라 백기를 들고 앞으로 가는 아들딸들이 방황하는 형제자매들을,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에서 하늘에 오르는 길로 되돌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향평준화 _ pinterest
부모형제를 포함해 모든 인간관계를 대중적으로 보며 모두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지금껏 가졌던 나의 타인에 대한 관심의 수준으로 부모형제를 보고 사랑하라는 하향평준화의 수준이 아니라, 여태 가졌던 부모형제에 대한 관심의 수준으로 타인을 보고 사랑하라는 상향평준화의 수준일 것이다.
그렇게 상향평준화해야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하늘에 오르는 길에 함께하고 싶듯이, 타인도 그렇게 사랑하며 그들과 하늘에 오르는 길에 함께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좁은 문, 협착한 길이라도, 가시덤불, 외나무다리, 상처투성이의 길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이 그분의 뜻을 먼저 아는 형제로서 선지자의 제자들과 새로운 성경의 독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