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되는 텍스트는 편안하게 읽힌다. 편안한 속에 불쑥불쑥 과학 정보가 들어 있다. 그림책이지만 과학책이다. 마리 퀴리, 리제 마이트너도 소개되고, 지구의 내핵과 외핵을 발견한 잉게 레만도 소개된다. 내핵과 외핵의 경계를 레만면이라고 부른단다. 저자 본인의 삶도 나온다. 교사로 근무했던 이야기, 암에 걸렸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과학과 과학자 이야기로 연결된다.
여러 모로 감동적인 책이다. 눈이 즐겁다.
책 속에서 (엉뚱하게) 감동받은 구절들
"바다를 연구하려면 뭘 해야 할까? 수영을 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바다에 들어갈 일이이 많을 테니...
수영 선생님은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했지만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 힘을 뺀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다들 잘 알 것이다. 작가는 수영할 때 힘 빼는 방법을 못배웠는지 모르지만 과학책 만들 때 힘빼는 법은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독자들이 편하게 즐겁게 책을 읽도록 온갖 노력과 정성을 쏟았다. 과학 책이라는 게 정보로 무장되어 있어서 읽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시작해야 한다면 독자들에게 멀어질 수밖에 없다. 빼어난 글솜씨와 멋진 그림으로 독자에게 밀착한 다음에, 오랜 경험으로 독자들이 알면 좋을 만한 지식을 슬며시 뿌려 놓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는 사막에서 세 달을 산 뒤 사막에 대한 글을 썼고, 하와이 화산 근처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화산에 대한 글을 썼고, 동물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다녀왔다."
이런 방식으로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는 학부에서 지구과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천문학을 공부했다. 땅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다니, 정말로 과학작가로 천하무적의 부러운 경력이다.
책 내용과 무관하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책이란 게 진지하고 일관성 있고 정보로 가득한 책이 무조건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 책처럼 사려 깊게 취사선택하고, 과학자의 삶과 작가의 삶의 단면들을 보여주면 분량과 정보량은 무조건 많다고 좋지는 않게 된다. 실크스크린 판화도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분명히 원래의 사진에 비해 실크스크린 판화는 정보량이 줄었다. 그런데도 그 대상에 대해 더 많은 느낌이 들게 한다. 내가 이제까지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던 책들은 일종의 우수한 식재료 정도였고, 이런 책은 맛있고 영양 균형이 잡힌 요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 요리는 식지도 상하지도 않는다.
선물용으로도 좋고, 비치용으로도 좋고, 소장용으로 좋아 보인다.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 않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