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기 Sep 09. 2015

파리는 비 온 뒤 맑음

라 데팡스와 먹구름 사이에 떠오른 태양 

Bonjour, Paris


  비행기는 17시간을 달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터미널은 활기가 넘치기보다는 차분했고, 창 밖엔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만 같은 먹구름 떼가 하늘을 짙게 수 놓았다. 우리는 예약해 둔 저가 공항버스를 찾지 못해 놓쳐 버렸고, 울며 겨자 먹기로 파리 시내로 향하는 전철 티켓을 새로 사야만 했다. 공항과 파리 시내를 잇는 기차 안은 예술의 도시라는 파리를 무색하게 할 만큼 낡은 모습이었다. 좌석 시트는 빛바랜 상태였고 기차는 심하게 덜컹거렸다. 파리로 향하는 사람들은 이 당연한 일상 속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신문을 읽고, 노래를 듣고, 속삭이는 것만 같은 부드러운 프랑스어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오직 우리만이 큰 배낭을 짊어지고 어색하게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파리 외곽은 낡고 허름했다. 벽들에는 곳곳에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어 어색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철역인 Châtelet les halles에 도착했고, 마레지구 쪽으로 가는 지하철로 환승했다. 두 정거장을 가니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한 Bastille 역에 도착했다. 

 바스티유의 거리에는 빗방울이 수면 위로 내려치며 터지는 파열음들이 어두운 거리를 경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진짜 파리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내린 비로 우산이 없어 헐레벌떡 뛰어가는 사람들과 거리에 내놓은 간판과 의자를 치우는 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그 와중에 느릿느릿 시간을 걷는 검정 우산 쓴 노신사. 시계는 여섯 시를 향하고 있었고, 우리는 비에 젖은 옷자락을 붙잡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마레지구의 모습.

 빨간 글씨로 Bastille Hostel이 새겨진 간판이 보이자, 우리는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호스텔 안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친절한 카운터 직원의 안내로 짐을 정리하고,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비는 멈췄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우산이 없는 우리를 놀리려는 듯 장난을 부렸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비로 젖은 파리의 거리를 거닐었다. 

악취로 악명 높은 파리의 지하철이지만, 파리지앵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실제로도 참을 만 했다.
알렉산드로 3세 다리. 흐린 하늘 속에 금빛으로 빛나는 조각상들이 눈에 띈다.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 차가웠지만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파리의 흔한 꽃집. 꽃이 너무 예뻐 살까 망설였지만 영화처럼 선물할 누군가가 없었기에 포기했다.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향해 무작정 걷다 보니 도착한 거리.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낯선 이들에게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자동차들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사람들은 멈춰야 할 때.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에펠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샤이요 궁 너머로 먹구름이 걷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가 고여 생긴 물웅덩이 위로 먹구름 낀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먹구름 낀 하늘 너머에는 파랗고 깨끗한 하늘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운 지하철을 타고 파리의 고층 건물 밀집 지역인 라 데팡스로 향했다. 라 데팡스는 신 개선문이라고도 불리는, 가운데가 뚫린 사각형 모양의 정부청사 건물로 유명한 지역이다. 파리 시는 도시의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신식 고층 건물들을 한 곳에 몰아 건설했다. 라 데팡스에 도착하자 이 곳이 여태 보았던 파리가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 멀리 먹구름은 서서히 걷히고 있었고, 곧이어 나는 놀라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라 데팡스의 신 개선문 속 먹구름 사이로 태양이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은 너무도 강렬해서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먹구름은 태양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점차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참 낯선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샹젤리제로 돌아가는 길, 저녁 8시를 향하고 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푸른색이었다.

 우리는 개선문 위에서 해 지는 풍경을 보기 위해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온갖 명품 브랜드들과 고급스러운 편집샵이 번쩍이는 샹젤리제 거리의 끝을 향해 걸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들의 언어로 노을 지는 파리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개선문 위로 올라간 우리는 노을 아래에서 별들이 뻗어나가는 것 같은 형상을 한 파리 시내 전체를 내다볼 수 있었다. 

노을 지는 파리의 하늘과 땅.
파리는 빛의시였다.
해가 지고 어느새  노랗고 붉은 색색의 조명들로 거리가 가득 채워지자, 사람들은 카페테리아에서 와인과 칵테일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 첫날의 파리는 무얼 천천히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이었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글에서도 느낄 수 있듯, 내가 보았던 풍경들을 하얀 도화지 속에 새기고 묘사하기 바빴다. 내일은 몽생미셸로 향한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잠자리에 들며 나는 내일은 좀 더 느긋하게 여행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수와의 숲의 하모니, 천상의 자연 플리트비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